김정은 제1위원장, 재일동포자녀들에게 교육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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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3,291회 작성일 16-04-1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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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발 조선중앙통신에 의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김일성 주석 탄생 104돌을 맞으며 재일동포자녀들의 민주주의적 민족교육을 위하여 일본돈으로 2억 1,880만엔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총련에 보냈다고 보도하였다.

 

보도에 의하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 그리고 김정은 제1위원장이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하여 보내준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은 지금까지 모두 162차에 걸쳐 일본돈으로 477억 8,799만 390엔에 달한다고 하였다.

 

북의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한 교육비 지원은 1957년 온 인민이 토굴 속에서 죽으로 연명하며 전후복구투쟁을 하던 1957년 나라의 정책으로 정착한 이래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멈추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왔다. 95년도 <우리민족끼리>사이트는 재일동포자녀 교육원조비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기사를 게재하였다.

 

“... 1957년 1월말 어느 날이였다. 평양에서는 김일성주석을 모신 가운데 새해 국가예산안을 토의하는 내각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에 시작된 회의는 밤이 깊도록 계속되였다. 김주석께서는 일군들이 작성해올린 서류의 새해 계획안 세목세목을 하나하나 따져나가시며 상세한 검토를 하시였다. 그런데 마지막조항까지 검토하신 김주석께서는 문득 보고드리던 일군에게 재일동포자녀들에 대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은 어느 부문에 넣었는가고 물으시였다.

 

물을 뿌린듯 조용하던 장래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 이 지상 교육력사상 그런 항목이 있어본적이 있었던가. 보고드리던 일군이 잠시 당황한듯 주춤했다. 그리고 이같은 궁색한 답변을 올렸다.

 

《수령님의 말씀이 계셔서 재일동포자녀교육비를 예견하고있습니다. 그런데 올해의 재정형편이 워낙 너무 긴장(부족하다는 뜻)해서… 형편이 허락하는 차제로 보내줄 생각입니다. 그래서 국가예산에는 반영하지 않고 별도로 림시 외화계획에 넣자고 하였습니다.》

 

보고를 받으신 김주석께서는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그저 손끝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시며 창밖으로 시선을 옮기시였다. 그리고 조용히 일어서시여 눈 내리는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시였다. 그 시간 그분에게는 많은 생각이 오고가는듯 수심에 찬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이윽고 김주석께서는 나지막하나 힘있는 음성으로 아닙니다, 보내주어야 합니다, 당장 보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공장을 한두개 못짓는 한이 있더라도 이국땅에서 고생하는 동포들에게 아이들을 공부시킬 돈을 보내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민족적의무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한두번 보내주고 그만둘일이 아닙니다, 일본에 우리 동포가 있고 배워야 할 어린이가 있는 이상 계속 보내주어야 합니다, 그렇기때문에 림시적인 사업으로 하여서는 안됩니다, 국가예산에 새로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라는 항목을 내오고 항구적인 사업으로 틀어쥐고 나가야 합니다, 내가 늘 말하는것이지만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사업을 단순히 교육사업이라고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민족을 도로 찾고 민족을 지켜나가는 중요한 민족적애국사업입니다라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이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 말을 잃고있었다.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 그러나 때가 어느 때인가. 전후복구건설시기, 3년이라는 기간 참혹한 전쟁을 치르고 미제의 무차별 폭격으로 온 나라가 페허로 화한 시기… 공장도 교육시설도 병원도 주택도 모조리 부서진 조선, 바위가 부서져 돌이 되고 돌이 부서져 가루가 된 조선, 깨여져나간 벽돌쪼각 하나라도 주어모아 나라에 보탬을 하겠다고 아낙네들이 재더미속을 헤집고 어린것들이 학교건설장에 가져간다고 녹쓸고 구부러진 못을 찾아 돌로 두드려펴고 인민들은 방공호식살림집 또는 토굴에서 죽으로 연명하던 시기이며 쌀 한톨, 나사못 한개가 천금같이 귀중했던 시기이다. 그러나 고심고심끝에 새해 예산안은 교정되고 마침내 1957년 4월 8일 조국으로부터 첫 교육원조비와 장학금 1억 2천만원이라는 거금이 재일동포들에게 송금 전달되였다.

 

그리고 그날의 김주석의 약속은 그후 장장 38년간의 긴 세월이 흐르도록 그 어느 한해도 빠짐없이 실행되여왔다. 그리고 그것은 죽음의 재더미우에서 헤매이던 전후복구시기뿐만아니라 지난 반세기 미제국주의 등 서구렬강들의 사회주의나라에 대한 경제봉쇄정책으로 목을 조이는 어려운 세월에도 또한 90년대초 사회주의나라들의 붕괴로 인해 일체의 그들과의 경제교류가 중단됨으로써 치명적경제난에 봉착하였을 때에도 쉬임이 없었다.

 

그 기나긴 세월 100회이상에 걸쳐 실행되여왔고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의 총액으로 말하면 131차에 423억 9,668만 2,433¥이라는 천문학적 수자가 나온다. 첫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받아안은 재일동포들의 감동과 뜨거운 눈물… 당시 1957년 4월 30일자 《조선민보》에는 이 같은 기사가 실리였다.

 

《지금 일본 방방곡곡 동포가 사는 곳이라면 그 어느곳, 어느 마당에로 가나 조국에서 보내준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에 대한 화제로 광활한 희망과 기쁨에 들끓는 장면에 부딪친다. 둘이 만나나 셋이 앉으나 동포가 모인 장소라면 이 화제로 꽃이 핀다. 시간이 가는줄을 모르고 감격의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저도 모르게 모두들은 내가 조선공민으로서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는가에 대한 자기 반성과 앞으로는 가만히 앉아있을수 없다는 말들이 터진다.》"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결성 60돌 경축 중앙대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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