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단상] 1948.10.19, 여순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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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봄호수
댓글 0건 조회 6,075회 작성일 16-12-08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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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단상] 1948.10.19, 여순봉기


민족일보  조덕원
등록일:2013-10-19 오후 08:50

 

 

1948.10.19, 오늘은 여순봉기가 일어난 날이다. 1995년부턴 여수·순천사건이라고 공식명칭을 정했지만, 여순봉기, 더 정확히는 여순무장봉기가 이사건의 본질적 특징을 담아내고 있다. 이 사건은 제주4.3항쟁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여수제 14연대가 거부하면서 발발했다. 남측만의 5.10단독선거에 반대해 떨쳐나선 제주4.3항쟁이 남측만의 8.15단독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진압되지 않자 이승만정부는 10.15 여수14연대에 10.19 20시를 기해 출동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김지회중위·지창수상사 등이 주도해서 무기고·탄약고를 점령한 후 비상나팔을 불고는 “동족상잔의 제주도출동 반대, 경찰 타도”와 “남북통일을 위해 민중의 군대로 행동할 것”을 호소했고 대다수병사들이 호응하면서 삽시간에 2500여명으로 불어났다. 이들은 20일 날이 밝기 전에 여수를 장악했다. 이어 이날 오전 순천으로 향했는데 순천을 방어하던 제14연대2개중대와 제4연대1개중대도 결국 무장봉기에 합류하며 오후3시경에는 순천도 완전히 장악됐다.


남로당원들과 봉기군은 인민위원회를 건설하고 토지개혁 등 6개항을 발표하며 미군방첩대여수주재원 이광선, 사찰계형사 박창길, 한민당여수지부장 김영준 등 9명을 처형했다. 학생들은 총을 잡고 봉기군에 합류했고 여성들은 봉기군에게 밥을 해줬다. 이후 이승만정부는 38선경계병력을 제외한 모든 군대로 진압군을 편성했고, 미군군사고문단과 만주군출신 장교들이 진압작전을 지휘했다. 진압군은 장갑차 등을 동원해 여수를 탈환했는데, 이런 진압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양민이 학살됐다. 봉기군이 들어왔을 때 죽은 사람 약 500명과 진압군이 들어왔을 때 죽은 사람 약 9500명은 대비가 되지 않는다. 이 숫자는 당시 전남동부지역총인구의 1/20에 해당한다. 이에 김지회중위 등 봉기군 1000여명은 지리산과 백운산으로 들어가 장기항전에 돌입하며 이때부터 남측내 무장유격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여수·순천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늘 저항의 중심에 있었다. 1894년 농민전쟁때 순천·광양의 농민군들은 호남지역농민군의 주도세력이었고, 일제시기에도 이지역에서 소작쟁의·노동쟁의가 빈번히 발생했다. 1920~30년대에 노동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지역은 전남지역이었는데, 이중 순천·광양에서는 소작쟁의도 매우 활발했다. 해방직후 순천의 노동조합평의회를 중심으로 인민위원회가 건설됐고 여순봉기가 일어나기 직전인 1948.2에는 여수에서 철도·항만노동자들 5000여명이 파업을 벌였다. 1948.5.10단독선거에 반대한 학생들의 동맹휴학도 여수·순천이 다른 지방에 비해서 매우 조직적이고 참여가 광범했다. 이는 여순봉기때 봉기군인들과 가장 밀접히 연갤해 활동한 집단이 학생이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남로당의 지도부가 박헌영와 같은 미군방첩대의 스파이들에 의해 장악돼 있었기 때문에, 제주4.3항쟁과 더불어 여순10.19봉기도 남로당을 통해 사전에 철저히 기획되거나 발발시 바로 전국화되지 못했고, 오히려 각개격파당하게 만들었다. 이 여순봉기직후 국군내 숙군작업중 박정희가 남로당신분이 발각돼 처형당하게 되자, 바로 동지들을 불고 변절하면서 미군의 하수인이 돼 오히려 국군에서 계속 진급하게 됐다. 제주항쟁에 이은 여순봉기는 남코리아의 민족·계급모순이 극에 달했다는 증거로서 이후 코리아전이 발발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가 됐다. 1987년 6월항쟁이후 가장 많은 사람이 본 소설중 하나인 『태백산맥은 』이 바로 이 여순봉기때부터 시작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다음 링크에서 방송을 들을 수 있다.

21세기민족일보

 

조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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