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혼'이다. 과거에 의한 현재고, 미래를 위한 현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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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봄호수
댓글 0건 조회 3,808회 작성일 16-12-08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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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혼'이다. 과거에 의한 현재고, 미래를 위한 현재다.
 
비단뱀 기사입력 2013/10/26 [16:26]
스산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이 시각 문득 바라본 달력에 오늘이 10월 26일. 박정희가 총에 맞아 죽은 날이라는 한 가지만 잠깐동안 기억에 의존했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2013년 10월 26일이라는 숫자는 우주공간을 가득채우고 만다. 왜 그럴까?  현재 대한민국의 미래가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암울의 혼란에 잠겨있고, 백 년전의 과거역사가 마치 오늘의 일처럼 강하게 심장을 찌르기 때문이다. 
 
허공을 가른 총성의 날 '10월 26일'! 그렇다! 이 날짜의 역사에 두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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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독립운동 헌신,맹세'한 단지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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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일왕 하사품 일본도'를 웅켜진 손

백 년전, 아니 이젠 백 년도 멀어진다. 그런데 오늘 우린 그 시대에 살고 있다. 아이러니일까? 자전거의 바퀴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돌아간다. 한일병합이후, 조선의 일부 유생, 지주들은 재산을 정리하여 통탄의 심정으로 빼앗긴 나라 되찾기 위해 만주로 건너간다. 그 중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안응칠)의사'가 있다. 몇 년전부터 한국의 근현대사가 뒤집어졌다. 역사가 제대로 생존하지 못하고 재강간당하기 시작. 그 중에 '안중근의사'  테러리스트란다. 
 
테러리스트라는 말을 누가 쓰나?
 
피해자가 가해자를 호칭할 때 쓴다. 개인이지만, 각자의 조국을 대변하는 두 인물. 일본제국의 이등박문과 대한의 '안중근의사'. 이등박문이 안중근의사의 총에 맞아 죽었다. 이등박문이 피해자고 안중근의사가 가해자란다. 그렇다면 안중근의사는 테러리스트보단 사실상 살인자가 더 정확하지 않나? 차마 살인자라는 말은 양심의 가책으로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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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망언, 안중근은 용기는 가상하지만 영웅시 해서는 안된다 무고한 일본인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테러리스트 






일본에서 메이지시대의 영웅을 죽인 '안중근의사'를 테러리스트라 표현하는 것은 입장차이로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왜 전체가 아닌 십분이해냐 하면! 자국의 유불리에 따른 입장대로가 아닌 조국을 강탈당했을 때 독립쟁취를 위한 진정한 애국행위라는 객관적 수용이 국경 초월 존중되어야 한다는 사견때문이다.  

 
그러나! 대한의 후손이라면 과연 '안중근의사'를 테러리스트라 부를 수 있나? 대체 누가 그렇게 부르나? 역사를 버리나! 바로 친일부역집단'시대정신'(구,뉴라이트)이다. 이들도, 역사배울 때, 분명 존경할 자랑스런 '안중근의사'로 배웠을 것이다. 그런데 대한의 독립을 지키고자 했던  '애국지사''안중근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른다면! 이들은 분명히 자신들 조상들의 뿌리를 버리는 친일부역정당이요, 집단이라는 역설을 발견할 수 있다. 
 
친일부역자들은 똑바로 봐라!
 
이등박문은 미천한 무사출신으로 입신양명을 꿈꾼 인물. 자국내에서 대영으로 테러활동 한 경력이 있으며, 천왕직할통치를 주장하던 자로서. 천왕폐위세력을 살해한 일도 저지른 자다. 급기야 영국, 미국의 유학까지 마치며 정치입문후, 달변가로서 반대세력을 축출하고, 일본제국헌법 마련부터 대한제국의 땅에 일본식민통치를 완성시킨 일본내 초대 내각 총리대신, 조선통감부 초대통감(조선침략군의 총사령관격)이었다.
 
일진회등 친일단체를 조직하고 한일병합의 첨병으로 활용하며 공작정치를 벌인 이등박문. 일본식민통치는 조선의 모든 기능, 권한, 역사를 말살시키려 대한의 산에 쇠말뚝을 박았다. 문화의 도략질, 무고한 대한의 백성을 죽이고 재산을 강탈해간 일본군국주의 사령관이었다. 이간책으로 조선내외에서 단결을 막은 군국주의였다. - 지구촌 곳곳에 기록된 사실 -
 
'안중근의사'는
고려유학자 안향의 26대 후손, 천주교신자로 동양평화주의자였다. 대한의군 참모중장겸 특파독립대장 및 러시아지역 사령관이었다. 한일신협약, 차관정치로 대한의 군대는 강제해산당하고 무관학교 출신들 군인은 국내에서 의병대장으로 만주, 미국으로 이주하여 그 곳에서 무력혁명만이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군대양성에 나서며 저항했다. 군대 강제해산이후 한일간 무장투쟁이 치열했고 대한의 의병 수 만이 목숨을 잃었다. 나라를 강탈해 간 '적'을 상대로 독립을 쟁취하고 자 한 무력혁명전쟁이었던 것이다. 
 
104년 전 거룩한 죽음 
 
'안중근',
천주교신자로서 일본군을 풀어준 적 있었다. 그 역풍으로 인해 신뢰를 잃고 러시아로 간 후 동지11명과 함께 '동의단지회' 결성. 적은 희생으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혁명의 인식이 싹 터 침략 원흉, 친일고급관리들의 처단을 목표로 두기 시작할 때다. 자원하여 침탈의 원흉 이등박문을 하얼삔역에서 저격. 브라우닝제 반자동권총 M1900, 7발에서 3발로 이등박문을 총살하고,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리 도시히코, 궁내대신비서관 모리 타이지로, 만철이사 다나카 세이타로등에게 중상을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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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1발을 남겨둔 안중근의사는 현장에서 자살,도망도 없이 당당하게 러시아경찰에게 체포된 후 대한의군 참모중장이자 특파 독립대장이라고 밝혔다. 저격 후 안중근의사는 러시아어로 " 코레아우라" (대한만세) 외쳤다. 1발은 왜 남기셨을까? 1발에 의미는 바로 절실한 천주교신자로서 평민인 일본인을 겨냥하지 않았음에 단순 암살과 테러를 넘어 자신의 삶과 항일독립투쟁의 대의에 거룩함을 담았다. 
 
안중근 의사의 이등박문 저격 이유 15가지
 
일본인이 아닌 일본군국주의를 증오한다며 한인 의병중장으로서 죄인을 처단했을 뿐 살해가 아니라고 굳건히 주장했다. 
 
안중근의사가 검찰의 질문에 밝힌 저격이유는
1. 명성황후시해죄
2. 고종황제 폐위죄
3. 5조약과 7조약 강제체결죄
4.무고한 한국인들 학살죄
5. 정권빼앗은 죄
6. 군대해산죄
7. 교육방해죄
8. 한인들 외국유학 금지죄
9. 교과서 압수하여 태운 죄
10. 제일은행권 지폐 강제사용죄
11. 한국인이 일본의 보호를 받고자한다고 세계에 거짓말 퍼뜨린 죄
12. 한일간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태평무사한 것 처럼 위로 천황속인 죄
13. 철도, 광산, 산림, 천택 강제로 뺏은 죄
14. 동양평화 깬 죄
15. 일본 천황 아버지 태황제 죽인 죄
 
'안중근의사'의 유언   
 
체포된 후 최대 지원자인 최재형과 국내외에서의 변호및 모금운동에도 불구하고 뤼순감옥에서 1910년 3월 26일 사형을 당하는 순간까지도 당당했던 '안중근의사'의 시신은 일본에서 숨겼다한다. 유언을 보면, "하얼삔 공원 곁에 묻었다가 국권회복후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였다. 광복후 반 백년이 지나도 김구선생께서 마련한 효창공원의 허묘는 비가오나 눈이오나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비단 일본에서 숨기는 이유에서일까? 이 것은 애국지사의 죽음에 대한 국민과 정치권의 무관심도 있다. 천국에 가서도 국권회복위해 힘쓸 것이며 동지들에겐 돌아가서 국민의무를 다해 업을 이루도록 일렀다한다.
 
'역사는 혼'이다하면서도 정작 우린 우리 역사를 어떻게 대했는 지 득세하는 친일세력과 일본의 재침탈을 앞둔 요즘에 다시 한 번 경각심을 지녀야 할 것이며 '안중근의사'의 저항정신과 유언을 받들어야 할 후손이 아닌지 숙연해야 할 것이다. 아직 대한독립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르시겠다 하신 '안중근의사' 오늘 거룩한 죽음 하나를 백방에 알린다. 침탈한 군국주의 원흉의 저격용 권총을 든 '안중근의사'의 손은 그렇게 거룩했다. 이래도 '안중근의사'가 테러리스트인가?
 
1979년 10월 26일 또 하나의 죽음과 손 
 
'박정희', 길게 쓸 가치도 없다. 박근혜의 아버지인 박정희의 죽음과 박정희의 손이다. 항일독립투쟁가들을 죽이고 일본 천황에게 혈서로 충성을 맹서하던 박정희,  다까기 마사오에 이어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일본인이 되고자 두번씩이나 개명하던 박정희, 목숨부지하고자 빨갱이원조 노릇하다가 동지를 팔던 박정희,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탈취한 박정희,가 1963년 항일독립투사들에게 건국훈장을 준다. 진정이었을까? 청와대에서 일본군복을 입으며 과거의 향수에 젖던 박정희가 진정한 통치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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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국민을 속이며 국민의 대표가 대통령을 뽑으면 된다며 유신헌법을 강행했던 독재18년박정희, 부마항쟁에 대해서 '캄보디아에선 인구 7백만 중 3백만을 죽이고도 아무렇지 않게 여겼는데 국민 목숨 1,2백만 죽인들 상관없다'는 차지철의 말에 동요하며, '대통령인 자신을 누가 죽이겠느냐'고 발포명령을 구상했던 박정희, 여성편력이 심하던 박정희, 결국 자신의 비서실장인 김재규에 의해...대한의 검은 밤하늘엔 총성이 울린다. 그런 박정희의 손엔 이 나라와 국민의 안녕대신, 시바스리갈이 담긴 술잔이 있었다.
 
10월 26일 두 사람의 죽음과 손을 생각하며 가치를 보게 된다. 묘하다. 안의사도 군출신이요, 박정희도 군출신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애국과 매국이라는 상반된 길에 있었다. 
 
안중근 의사 손엔 역사적 대의실천이 박정희 손엔 술잔이,, 안 의사 죽음은 독립투쟁정신이 담겨있고 후손대대로 존경과 스승의 입지에 있다. 박정희 죽음은 독재욕이 하늘을 찌른 대가였고 주변 학교 학생들마저도 기뻐서 춤을 췄다. 오늘 같은 날은 박정희의 죽음보단 '안중근의사'의 거룩한 죽음을 새겨야 할 것이다. 일본이 안중근의사의 묘지를 밝히지 않는 것 또한 속으론 안중근의사를 존경한다는 반증도 된다.
 
역사왜곡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하늘과 조상의 한이 왜곡과 침탈앞에서 강진등 자연재해를 일본에 내리지 않던가!
안중근의사가 생존하신다면 새누리당과 역사왜곡에 앞장서는 친일부역자들의 목숨은 이미 지옥으로 떨어졌으리라. 현대판 조상대대로의 친일부역자들은 역사를 두려워하라!
하늘이 내려다 보고 있고 땅이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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