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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눈으로 우리를 보지 말고 우리의 눈으로 유럽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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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7-12 17:41 조회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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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19세기 조선과 아메리카와 유럽

 

“유럽의 눈으로 우리를 보지 말고 우리의 눈으로 유럽을 보자”

 

김갑수 | 2017-07-12 15: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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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19세기 조선과 아메리카와 유럽
“유럽의 눈으로 우리를 보지 말고 우리의 눈으로 유럽을 보자”


어떤 공동체가 발전하는지 퇴보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 중에서 가장 종합적인 지표는 인구 증가율일 것이다. UN 통계에 따르면 2005년 ~ 2015년 10년 사이 세계 인구는 11.7% 증가했는데 한국은 거의 최저치인 2.4%이다.

 

특이하게도 한국의 인구 증가율은 영국(2.9), 프랑스(3.0) 네덜란드(3.1) 등의 유럽 국가보다도 밑도는 수준이다. 물론 현대의 인구 증가는 평균 수명의 대폭 연장과도 밀접히 관련된다.

1492년 유럽인 콜럼부스가 아메리카에 발을 디딘 즈음의 유럽 인구는 약 7,000만 명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남북 아메리카 원주민 인구는 얼마나 되었을까? 놀라지 마시라. 아메리카 역시 유럽과 같은 수준인 7,000만 명이었다. (스벤 린드크비스트 저, <야만의 역사>, 한겨레신문사, 2003 참조)

이로부터 300년이 경과한 시점, 단순 계산으로 1792년으로 했을 때 유럽 인구는 약 450% 증가한 반면 아메리카 인구는 90 ~ 95% 격감했다. 이것은 유럽인이 내세우는 ‘문명의 진보’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는 ‘은폐된’ 사례이다.

이 기간 동안 아메리카 원주민은 유럽인에 의한 살인, 유럽인에 의한 전염병, 유럽인에 의한 노예 포획 등으로 7,000만 명 중 겨우 5~10%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토록 극심한 원주민 인구의 격감은 유럽인에게는 중차대한 의미가 있다. 유럽인의 450% 증가와 아메리카인의 90% 이상 격감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이것은 유럽인의 대 아메리카 자본 약탈과 불가분의 관련을 갖는다.

여기에 조선시대의 인구 동향을 비교해 보자. 1392년(콜럼부스 100년 전) 조선 개국 당시 인구는 550만 명이었다. 이로부터 약 120년 후인 1511년 1,000만 명을 돌파한다. 우리가 동의하듯이 15세기는 조선의 전성기였다.

조선은 1592년과 1636년에 임진, 병자 두 전쟁을 겼었다. 두 전쟁 직후 조선 인구는 1511년과 비슷한 수준인 1,000만 명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로부터 100년 후인 1744년 조선 인구는 1,800만 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100년 동안 80%가 증가한 것이다.

우리는 18세기가 조선의 2차 전성기였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이런 통계는 “조선은 임진왜란 때 망했어야 한다”는 세간의 푸념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를 실증한다.

19세기 이후 조선 인구는 1884년의 1,660만 명, 1910년에는 1,740만 명으로 추정된다. 민영환이 1905년 을사늑약에 항거, 자결하면서 남긴 유서 제목은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이었다.

유럽의 근대가 자본주의가 발달했다고 해서 문명 진보한 시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의 자본주의가 발달한 것도 맞고 그들이 문명 진보한 것도 맞다. 그러나 이것은 유럽인의 눈으로 본 유럽일 따름이다. 문명 진보란 자력으로 또는 타자와 연대해서 평화적으로 이루는 것이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유럽의 문명 진보론은 폭력성을 은닉하고 있는 허구에 불과하다.

조선을 신분사회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틀리지 않은 말이다. 조선은 양인과 노비로 2원화된 신분사회였다. 양반은 신분 개념이 아니라 공직자를 뜻하는 직업 개념이었는데, 이것이 확충되어 상위 신분처럼 행세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1729년 기준, 양반 26%, 양인 60%, 노비 12%였다. 이로부터 약 140년 후인 1867년에는 양반 65.5%, 양인 34%, 노비 0.56%로 크게 변화한다.(정석종, <조선후기 사회변동 연구>, 일조각, 1983)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조선은 자체의 역량으로 신분제를 거의 해체해가고 있었다는 증거가 아닌가?

19세기 이후 조선 반도의 해안과 섬들에는 이양선이 최소로 잡아 35회 이상이나 출몰했다. 당시의 이양선은 모두 무장 함선이었다. 서양 외세의 침탈은 조선의 권력층을 위축, 타락시켰고 이것은 민심의 이반을 초래했다.

그럴수록 세도정치의 가렴주구가 극성을 부렸다. 때 맞추어 일본은 유럽식 방법으로 조선을 능멸했다. 조선 망국의 원인을 조선의 내재에만 두고 함부로 조선을 폄하하는 역사관은 식민사관과 근접해 있음을 알기 바란다.  (끝)

원문출처/진실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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