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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에 포탄 20발만 더 있었다면 인천상륙작전 못했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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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8-04 23:07 조회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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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에 포탄 20발만 더 있었다면 인천상륙작전 못했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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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11일 인천 자유공원에 세워진 매카더동상을 끌어내리려는 남한인민들과 이 것을 막을려는 경찰과의 싸움

(자료시잔편집입력/재캐나다동포전국련/출처, 오마이뉴스) 

이창기 기자 icon_mail.gif  

 

기사입력: 2017/08/04 [21:2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위키백과에 나와 있는 인천상륙작전 2일 전 미군의 월미도 포격 사진 

 

9월 15일은 인천상륙작전 기념일이다. 남측에서 5000:1의 성공확율을 뚫고 성공시킨 위대한 작전이라고 영화까지 만들었고 인천 곳곳에는 기념시설은 물론 미국 땅에도 없는 맥아더의 동상까지 세워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맥아더가 상급의 명령을 잘 따르지 않은 고집불통으로 함부로 원자탄까지 사용하려한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혀 한국전쟁 당시 철직까지 당한 장군이다. 물론 미국에서는 인천 맥아더 동상을 훼손할 것이라면 미국으로 보내달라며 미국에 세울 의지를 표하기는 했다.

 

인천상륙작전은 분명히 부산 낙동강 전선까지 진출한 인민군대의 허리를 치고 들어가 전세를 역전시킨 성공한 작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남측에서 지금처럼 찬양할 정도로 미군이 잘 싸운 전투인지에 대한 의문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적어도 월미도라는 작은 인천 앞의 섬을 며칠 동안이나 점령하지 못한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위키백과에서 인천상륙작전을 검색해보면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이틀 전인 9월 13일 월미도를 포격하는 미군 함선의 사진이 소개되어 있다. 미군은 그 전에 수많은 폭격기를 동원하여 월미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월미도를 그날 점령하지 못하고 결국 15일에 대대적인 폭격과 상륙작전을 통해 월미도를 점령하고 인천까지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월미도에 미군이 얼마나 많은 포탄을 쏟아붓고 폭격기 공중폭격을 가했는지 민간인 수백명 희생되어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에 조사 요구가 들어오기도 했다. 그런 엄청난 폭격을 가했음에도 미군은 며칠 동안 월미도를 점령하지 못했던 것이다.

 

▲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전개도, 월미도를 점령하지 못하면 인천 상륙은 불가능한 지형이다. 월미도에서 상륙하는 미군 뒤통수를 때려 막심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에서는 인민군 해안포병들이 단 4문의 포로 3일간 미군의 상륙작전을 저지했고 그 귀중한 시간을 이용하여 인민군 주력을 낙동강에서 안전한 후방으로 후퇴시킬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튜브 등에 소개된 월미도란 영화에서도 그런 주장을 했는데 최근엔 '월미도의 3일간'이란 혁명가극을 만들어 그런 주장을 북 주민들에게 널리 확산시키고 있다는 소식들이 인터넷에 소개되고 있다.

 

"조국의 한줌의 흙은 목숨보다 귀중하다는 참다운 애국심을 간직하였기에 월미도용사들은 300여척의 함선과 1 000여대의 비행기, 5만여명의 병력으로 덤벼드는 미제와 맞서 단 4문의 포로 3일동안 월미도를 목숨바쳐 사수하였다. 그들의 영웅적희생정신은 우리 청년대학생들에게 조국을 어떻게 사랑하며 지켜야 하는가를 가르쳐주고있다."- 김책공업종합대학 학생 리주식

 

이는 가극을 본 한 북녘 대학생의 감상평이다.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인민군들은 미군 인천상륙부대들이 서울까지 진격하는데 10일 이상을 막아낼 방어선을 영등포 등에 구축할 수 있었고 결국 그 덕에 인민군 주력이 안전하게 북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은 성공적했지만 그 직후 신속히 서울을 점령하지 못했고 한반도를 완전히 동서로 차단하지 않고 북으로 진격해 들어간 것은 중대한 패착이었다는 평가는 남녘 보수진영 전문가들 속에서도 많이 나왔다.

하지만 맥아더라고 해서 어찌 신속하게 서울을 점령하고 동서를 완전히 끊고 싶지 않았겠는가.하지만 생각만큼 빨리 인천 점령을 못하다보니 인민군대가 방어선을 구축할 시간을 벌어주었고 격렬한 저항에  인민군 주력의 후퇴를 막을 완전한 동서 차단에는 실패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인터넷에 이 정도 성공한 인천상륙작전도 월미도 해안포대에 20여발의 포탄만 더 있었다면 아예 실패했을 것이며 결국 맥아더는 군산상륙작전을 진행했을 것이란 진단이 나왔다.

 

그 분석에 따르면 북의 김일성 주석은 이미 인천상륙작전을 예견하고 평양의 관문 남포를 지키는 해안포 일부 부대를 인천으로 급파했는데 미군의 첩보원 역할을 하던 박헌영과 이승엽이 이를 미군에게 알려 이동 중이던 이 인민군 부대를 공중폭격으로 괴멸시켜버렸다는 것이다.

 

결국 살아남은 1개 중대 규모의 해안포 부대원들과 멀쩡한 4문의 포들만 모아 월미도에 가지고 가 배치했는데 그러다보니 포도 종류가 다 달라서 포격전 때 포 하나가 망가지면 그 포에서 사용하던 포탄을 다른 포에서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포탄을 아끼고 아껴가며 미군의 상륙을 3일 간 저지했는데 결국 포탄이 다 떨어져 15일에는 더는 저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20여발의 포탄만 더 있었다면 15일에도 미군은 상륙작전을 진행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러면 조수간만의 차가 극심한 인천 지형적 특성상 더는 상륙작전을 진행할 수 없었을 것이며 더 상륙작전을 전개하기 유리한 지형인 군산상륙작전을 진행했을 것이라고 분석하였다.

 

▲ 남측에서 정리한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점령지와 점령 일자, 서울 수복이 9월 28일 즉 인천상륙작전 후 13일이나 걸렸다. 차로 2시간 거리를 13일 걸려 점령한 것이다.그리고 가운데 인민군 주력군 후퇴로는 완전히 차단하지 못했다. 그래서 남측 친미학자들도 인천상륙작전은 반쪽 성공이라고 평하는 것이다.  

 

사실, 월미도만이 아니라 인천도 250여 척의 함선 함포사격으로 완전히 쑥대밭을 만든 다음 상륙작전을 진행했기 때문에 미군은 별 저항없이 상륙할 수 있었다. 실질적인 저항은 함포 사정거리 밖에서 벌어졌다. 그리 많지 않은 인민군대들이 서울로 가는 곳곳에서 격렬하게 저항하면서 미군이 서울을 완전히 장악하는데 10일이 넘게 걸렸다. 미군 발표에 따르더라도 28일에 가서야 서울 전역을 점령했던 것이다. 월미도에서 3일, 서울 점령에 13일 총 16일이면 인민군 주력이 충분히 후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인천상륙에는 미군이 성공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미군이 박헌영, 이승엽과 같은 거물급 인사를 첩보원으로 만들었다면 그것이야말로 대단한 능력이다. 북의 최고 지도층에 포진한 이런 인물들에 의해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관점을 달리한다면 인민군대는 방어할 어뢰정과 같은 작은 함선도 없고 전투기는 더더욱 없는 조건에서 지원군마저 미군 첩보망에 걸려 괴멸된 최악의 조건에서 한 개 중대 역량인 단 4문의 포로 월미도를 3일간이나 지켰다면 그 인민군의 전투력을 어떻게 평가해야할 것인가. 어떤 군사적 평가 기준으로도 평가해볼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당시엔 북이 인민군대를 만든지 2년여밖에 되지 않았고 정신력이나 훈련정도가 지금 인민군대와는 비교할 수 없이 낮았다는 사실이다.

특히 낙동강에서도 그렇고 월미도에서도 그렇고 소련에서 주기로 한 포탄을 주지 않아 포탄과 총알 부족으로 결정적 공격을 하지 못해 결국 후퇴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 미군이 북으로 밀고 들어가 북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역사적 경험을 통해 북은 상상할 수 없이 많은 양의 포탄을 만들어 배치해 두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북 인민군대는 300미리 방사포처럼 광학유도장치까지 달린 신형포탄과 그것을 쏠 수 있는 첨단 신형 포를 새로 대대적으로 만들어 배치하면서도 이미 준비해둔 구형포탄을 사용할 수 있게 구형포를 절대 버리지 않고 여전히 군 부대에 실전배치해두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전쟁불사론을 외치고 있고 남측 국방부와 군사 전문가들은 북 인민군대들은 동성애나 하고 나자빠져 있고 군기가 빠져 엉망이라며 전쟁나면 한나절에 북 전역의 레이더기지와 주요시설을 초토화시키고 며칠 내로 북 전역을 점령할 수 있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는데 그렇게 쉽게 볼 상대가 아닐 수 있을 것 같다.

북과의 전쟁은 정말 신중해야할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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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전략의 최고수법 중 하나가 허허실실이다.

그들이 할 걱정

17/08/04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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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로 하여금 자신을 얕보게 만들수만 있다면 그것은 최상의 전법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 난 양키가 북을 치는 공격적인 수를 두는 것이 좋다고 본다. 죽든 살든 그기에서 이 천지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간단한 기회가 만들어 지기 때문이다. 혹 골빈 놈들이 이곳에서 댓글 을 달면서 평화를 외치고 있던데... 평화? 좋은 말이다. 네만 편하면 평화냐? 극소수의 평화를 위해 절대다수의 평화를 파괴하는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극소수의 평화를 파괴하여 절대다수의 일상적 평화를 유지 수호하는 것이 제대로된 평화이다. 그냥 하루 24시간 자신의 주변에 포탄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평화가 아니다. 포탄보다 더 무서운 생존을 위협하는 교수대 밧줄이 늘려있지 않은가? 대다수의 평범한 대중들에게! 그런데도 평화를 위장한 죽음의 현실전장을 외면하고 마냥 군사력의 직접사용에 의한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는 행위를 비난한다면 교육이 잘못된 것이다. 대가리속 지식이 썩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떤 평화를 원하는가? 개인적으로 파렴치하고 사악하고 부도덕한 자들의 만푸장의 평화욕에 희생되는 절대다수 대중들의 평화를 난 평화라고 부를 수 없다. 그것은 아주 잔인한 전쟁과 학살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젠 그런 역설적이고 기만적인 상황을 전지구적 차원에서 종식시켜야 할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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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 미군 아내선은 일본해군이 탑승했다

그런데

17/08/04 [23:58]

수정 삭제

 

지뢰 기뢰 제거도 일본군이 했다고 한다. 1945년 눈물을 머금고 우리나라를 떠났던 일본군은 이렇게 기회가 빨리 올 줄 몰랐을 것이다. 정확한 자료를 찾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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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1

17/08/05 [08:05]

수정 삭제

 

양키군 인천작전이 "승리"라니 어처구니가 없네. 크게 봐도 반도 동서를 꿰질러 낙동강까지 밀고내려간 북의 인민군주력을 완전소멸하는 동시에 북상하여 북을 완전궤멸시킨다는 목적을 어느 하나도 달성못하고, 작게 보면 이 기사에도 ?듯이 단 4문의 포밖에 못가진 해안포 1개중대를 비교도 못할 그 방대한 무력이 사흘간이나 걸려서야 겨우 제압했음에도 "승리"라니 이 땅에 사는 이들의 셈법이 어떻게 돼먹었는지 도대체 알수 없다. 맥아더의 인천작전은 완전한 패작이라구

(끝) 기사출처/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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