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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전 오늘(1923년 3월 16일)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열두살 어리신 나이에 조국을 알아야 한다는 아버님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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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3-15 13:49 조회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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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천리길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열두살 어리신 나이에 조국을 알아야 한다는 아버님의 뜻을 새기시고 혼자몸으로 장백현  8도구에서 만경대까지 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버님으로부터 얼마간의 로자와 고향 만경대까지의 로정을 적은 목책을 받으시였다.

목책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실 길과 쉬실곳을 비롯하여 도중에 두번 전보를 치실 지명까지 적혀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12(1923)년 3월 16일 아침 부모님과 동생들의 바래움을 받으시며 8도구를 떠나 압록강을 건느신 다음 조국땅 포평에 도착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머님께서 밤새워 지어주신 두루마기자락을 날리시며 계속 기운차게 걸으시여 월탄을 지나 험한 오가산령을 넘으시고 화평, 흑수를 거쳐 3월 19일   저녁에는 강계에 이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4년전 부모님을 따라 중강으로 가실 때 주무시고 가신 일이 있는 한 객주집에 드시였다. 다음날 강계우편국에 가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곱자부터 전보료금을 더 물어야 하는 사정을 고려하시여 생각끝에 여섯자로 된 《강계무사도착》이라는 전보를 8도구에 계시는 아버님께 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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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수령님의 10대 소년시절 (출처/위키백과, 편집입력/재카나다동포전국련) 

3월 21일 다시 길을 떠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성간(당시 별하), 전천, 고인을 거쳐 명문고개를 넘고 청운, 희천, 향산, 구장을 지나 개천에 도착하시였다. 개천에서 기차를 타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안주를 거쳐 평양에 도착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아버님께 두번째 전보를 치시고 3월 29일 만경대에 이르시였다.

압록강을 건너 포평에서부터 만경대에 이르는 천리로정, 천고의 수림을 헤치시고 찬바람, 눈보라 휘몰아치는 계곡을 누벼 나가시는 이 배움의 천리길은 위대한 수령님께 있어서 참으로 멀고도 간고한 길이였다. 하지만 그 길에서 겪으시는 자신의 고달픔보다 더욱 마음 아프고 괴로우신것은 일제에게 짓밟히고 뜯기우는 조국의 참상을 보시는것이였다. 깊은 산속에 점점이 보이는 화전민의 움막집들과 거기에서 주고받는 기막힌 이야기들, 포승에 묶이워 끌려가는 무고한 인민들, 실로 어디서나 보이는것은 수난속에 허덕이는 겨레의 모습이였고 들리는것은 인민들의 원한과 한숨뿐이였다.

모진 피로를 꿋꿋이 이겨내시고 심산의 길을 헤쳐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혼자몸으로 고향집 사립문안에 들어서시였을 때 일가분들은 깜짝 놀라시였다. 열두살 어리신 나이에 산중 천여리길을 혼자 걸어오다니… 모두가 이렇게 감탄하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이가 어리다고 두 나라 지경이야 혼자 못다니겠는가고 도리여 웃으며 대답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담차고 름름하신 모습에 할머님이신 리보익녀사께서는 《그래! 신통히 너두 통이 큰 너의 아버지를 닮았구나! 네가 아마 몇해후면 백두산에 걸터앉아 동해바다에다 대고 발을 씻자고 할게다!》라고 하시며 못내 대견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곧 만경대에서 4㎞가량 떨어진 칠골외가에 가시여 창덕학교 5학년에 편입하시고 공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걸으신 력사적인 천리길로정에 수놓아진 불멸의 혁명사적을 길이 전하기 위하여 천리길로정우에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모시였으며 화평과 개천 등지에 혁명사적관을 꾸리고 헌시비를 세웠다. 그리고 포평, 강계, 전천 등지에 학생소년궁전을 건립하였으며 천리길로정의 의의깊은 곳마다에는 혁명사적기념비를 세웠다.

오늘 우리 공화국의 청소년학생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배워 강의한 의지와 튼튼한 체력을 소유하기 위한 《배움의 천리길》답사행군을 해마다 정상적으로 진행하고있다. (메아리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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