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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와 더불어》 1권 1장 (제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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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4-24 12:07 조회1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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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1권 1장

 

(3부)


해방이 되여 고향에 돌아왔을 때 할머니는 사립문밖에서 나를 부둥켜안고 《아버지, 어머니는 어데다 두고 이렇게 혼자 왔느냐, … 같이 오면 못쓴다더냐!》 하며 내 가슴을 두드리였다.

할머니의 심정이 그처럼 비통할진대 만리타향에 무주고혼이 되여 누워있는 선친들의 유해마저 모시지 못하고 고향집 사립문에 홀몸으로 들어선 내 마음이야 어떠했겠는가.

나는 그때무터 남의 집 사립문에 들어설적마다 이 사립문으로 나갔다가 돌아온 사람은 몇이며 돌아오지 못한 사람은 얼마일가 하는 생각을 하군하였다. 이 나라의 모든 사립문들에는 눈물에 젖은 리별의 사연이 있고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혈육들에 대한 목메인 그리움과 뼈를 에이는 상실의 아픔이 있다. 수천수만을 헤아리는 이 땅의 아버지, 어머니들과 형제자매들이 조국광복의 제단에 생명을 바치였다. 우리 민족이 피와 눈물과 한숨의 바다를 넘어 포연탄우를 헤치며 조국을 찾는데는 실로 서른여섯해라는 기나긴 세월이 걸리였다. 그것은 너무나도 비싼 대가를 요구하는 혈전의 서른여섯해였다. 그러나 그런 혈전과 희생이 없었다면 어떻게 오늘의 조국을 상상이나 할수 있겠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기는 지금도 치욕스러운 노예살이가 계속되는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세기로 되였을것이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일생 농사밖에 모르고 살아온 촌늙은이들이였지만 진정을 말하건대 나는 그분들의 견결한 혁명정신에 탄복하였고 거기서 커다란 고무를 받았다.

말이 쉽지 자식들을 키워 고스란히 혁명의 길에 내세우고 그에 뒤따르는 갖은 고초와 시련을 묵묵히 견디면서 자손들의 뒤를 꾸준히 받쳐준다는것이 한두번의 전투나 몇년간의 감옥살이에 비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일가가 당한 이러한 불행과 고초는 나라를 잃은 우리 민족이 당한 불행과 고초의 한 축도에 지나지 않는다. 수십수백만의 조선사람들이 일제의 학정밑에서 굶어죽고 얼어죽고 불타죽고 맞아죽었다.

나라가 망하면 산천도 사람도 결코 편안할수가 없다. 망한 나라의 지붕밑에서는 나라를 판 값으로 호의호식하는 매국노들도 발편잠을 자지 못하는 법이다. 사람은 설사 살아있어도 상가집 개만 못하고 산천은 설사 지경이 남아있어도 제 모습을 보존하기 어렵다.

이런 리치를 먼저 깨닫는 사람을 선각자라고 하며 와신상담하면서 나라의 비운을 가시려고 애쓰는 사람을 애국자라고 하며 제 한몸을 불태워 진리를 밝히고 만민을 불러일으켜 불의의 세상을 뒤집어엎는 사람을 혁명가라고 한다.

나의 아버지는 우리 나라 민족해방운동의 선구자의 한사람으로서 1894년 7월 10일에 만경대에서 탄생하여 1926년 6월 5일 망국의 심야에 한을 품고 돌아갈 때까지 일생을 혁명에 바친분이였다.

나는 아버지 김형직의 맏아들로 망국 이태후인 임자년(1912년) 4월 15일에 만경대에서 태여났다. (3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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