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평양 방북기 (2) <북중 정상회담하는 날 평양의 하늘은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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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162회 작성일 19-07-1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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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평양

 



방북기 (2)  <북중 정상회담하는 날 평양의 하늘은 맑았다> 

 

정기성 ‘6.15뉴욕지역위원회’ 부위원장 / 민플러스 

 

 

한가로운 모란봉 산책

이날 오후에는 모란봉 산책에 나섰다. 아마도 역사적인 북중정상회담이 열리고 있기 때문에 방문객들은 가급적 한적한 곳으로 안내한 듯하다. 옥류관에서 오른쪽으로 한 500미터쯤 걸어가면 모란봉 공원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시작된다. 걸어가는데 공원입구에 기동순찰대라고 쓰인 미니밴들이 잔뜩 주차되어 있다. 아마 시 주석 때문인가 보다. 물어 보니 그렇단다.

공원 입구 왼편에 있는 큰 공터가 한창 공사 중이다. 그 앞쪽에는 청량음료와 간단한 음식들을 파는 매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까까오’(아이스크림을 부르는 북쪽말), 각종 청량음료들을 사 먹고 있었다. 본래 야외극장이었는데 규모를 늘려 대규모 야외공연장을 건설 중이란다.

공원 입구 계단을 올라가자 한국전쟁(북쪽에선 조선전쟁)에서 희생당한 러시아, 옛 소련군병사들을 기리는 기념비인 해방탑이 우뚝 서서 공원에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곳 모란봉 공원에 같이 위치하고 있지는 않지만 비극적 역사의 현장에서 희생당한 중국인민지원군 병사들을 기리는 조중우의탑과 함께 해방탑은 공원에 오는 사람들 심장마다에 당시의 준엄한 역사를 다시 깨우쳐 주고 있는 것만 같다. 후에 로동신문을 보니 시 주석은 21일 조중우의탑을 참배하고 헌화했다.

해방탑에서 을밀대까지 대동강변을 오른쪽에 끼고 걷는 모란봉 산책길은 잘 정비되어 있다. 휴일에는 가족단위로, 직장동료들끼리, 연인끼리 이곳을 찾은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그런데 평일이고, 5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이어진다는 모내기 총동원기간이라 그런지 공원이 매우 한적하다. 또 평양 시민들이 시 주석의 평양 방문과 정상회담을 환영하는 행사에 나갈 것이다. 사실 공항에 도착하는 하는 날부터 온 나라가 모내기 전투에 참여하느라 정신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모내기에 심혈을 기울인다는데 나만 홀로 편안히 여행을 하는 것도 참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허락만 해 준다면 모내기 한번 하러 갈 수 없겠냐” 물었더니 “가면 도움은 못 되고 짐만 된다”며 “마음만 받겠다”며 웃는다. 사실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청류벽 절벽 위에 있는 정자 난간에 서니 왼편엔 오늘밤 시 주석을 위한 환영행사가 열릴 5.1 경기장이 보이고 그 오른편으로는 최근에 많이 보도된 려명거리, 창전거리 등 수많은 고층 아파트들과 평양의 상징인 주체사상탑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풍경에 아름답다고 이야기하지 않을 사람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정말 대동강변의 풍경은 그야말로 한편의 그림 같다.

하루 빨리 남녘의 많은 사람들이 이 청류벽 난간의 정자에 서서 저 아름다운 평양 시내를 바라 볼 수 있게 되길 빌어본다. 그렇게 되면 ‘남쪽에선 정말 대단한 경제와 기술력으로 부를 이루었다면, 북에선 자기들만의 사상과 힘으로 세계 제일대국 미국과 맞서며 70여년의 그 삼엄한 경제봉쇄 속에서도 허리띠를 졸라 매며 저 아름다운 평양을 건설한 사실에 대해 남과 북의 우리 민족이 정말 자랑스럽게 느껴지지 않겠는가’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 본다

다시 해방산호텔로 돌아 왔다. 해방산호텔에는 커피점이 1층, 2층, 5층, 그리고 8층 맨 꼭대기 만장이라 불리는 곳까지 4군데나 있다. 그 중 규모가 있는 곳은 1층과 8층이다. 그 중에 아무래도 손님들 가기 편리한 1층의 커피점이 제일 크고 또 제일 바쁘다.

각 커피점 마다에는 자신의 일터를 초소라고 생각하고 그런 마음으로 손님들을 맞이하는 봉사원동무들이 있다. 시간가는 줄 모르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밤 10시, 40분, 문을 닫을 시간이다.

“아침 7시 반에 물을 열려면 일찍 일어나야 할 텐데 11시에 끝나니 이제 그만 문 닫을 준비를 하면 안 되냐?”

“일 없습네다. 혹 늦게 찾아오실 지도 모를 손님들을 위해 초소를 잘 지켜야디요.”

일이 있어 먼저 들어간 은주 언니 대신 혼자 일을 보던 금이 동무의 말이다.

이 친구들이 하도 손님들에게 친절해 인기들이 많은지라 손님들이 이름 첫 글자를 따서 ‘은동이’, ‘금동이’란 별명을 붙여 주었단다. 금동이의 말에 갑자기 쨍하니 뭔가 다가온다. 자기의 일터를 나라를 지키는 병사들의 초소처럼 생각하는 이 나라 젊은이들의 마음을 엿보아서인가 보다.

이 나라가 미국과 맞서 70여 년의 엄혹한 경제봉쇄 하에서도 이렇듯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하고, 또 세계 제일의 집단체조로 불리는 공연들을 창작하는 그 힘이 바로 이 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수많은 은동이 금동이들이 자기 일터와 나라를 지키는 초소가 된다는 그 ‘초소’의 힘이 아닐까.

해방산호텔 각 커피점에도 이 은동이 금동이들이 있다. 전부 다닐 수가 없어 1층 금동이, 은동이네 커피점과 제일 전망이 좋은 8층 만장 커피점을 주로 이용했다. 8층은 엘리베이터가 없어 5층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조금은 한산한 터라 조용한 만남엔 좋다.

“종국엔 뜨럼뿌(트럼프 대통령)도 올 거야요”

해방산 호텔을 이용하는 손님들에게 우리 8층도 많이 소개해 달라는 영심, 련희 두 동무와 새로 건설되는 백두산 삼지연호텔에서 근무할 인력을 교육시키느라 수십 명이 와 있는데 비교적 한가한 만장 커피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샛별이란 19살 어린 친구가 있다.

“너희는 이번 북중 수뇌회담에 대해 어떻게들 생각하나?”

“습근평 동지가 방문 전에 특별담화를 발표한 것도 역사에 없는 일이지만 현 북미담판의 정세하에 북중 수뇌회담은 아마 미국을 더 압박할 것입네다. 이제 보시라요 인차 뿌찐(푸틴 대통령)도 올 겝니다. 그리고 종국엔 뜨럼뿌(트럼프 대통령)도 올 거야요.“

그리고 곧 이어 밝은 어투로 결론을 짓는다.

“우리 원수님이 세계 정치의 중심에 서 있습네다.”

영심 동무의 답변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성숙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련희 동무는 말이 조용조용한 편이다. 반면 성악가로 활동했다는 영심 동무는 대단히 밝고 쾌활하고 표현에 거침이 없다. 처음에 만장에 갔을 때 몇 마디 주고받고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금방 친숙한 관계가 되도록 사교성이 아주 많은 봉사원 동무다.

평안북도 출신으로 중학교 때 노래실력을 인정받아 인민군협주단에서 운영하는 예술학원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과정을 마치고 인민군 예술단에서 성악가로 활동하였단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살도 찌고 든든했던 몸이 갑자기 살이 빠져서 노래하는 게 힘이 들어 진로를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성악가들은 단전으로 노래를 한다니 몸이 일반인들 보다는 좀 더 살도 찌고 배도 좀 나오고 해야 하는데(?) 말라 버리니 노래하는 것이 힘이 들 수도 있었겠다.

“그런데 몸이 말랐는데 남편은 더 좋아해요 뭐 처녀 같다나요. 하하하”

밝게 웃는 영심이의 웃음소리가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게 들렸는데 헤어지는 날 아침 보니 몸이 아파서 집에 일찍 간다고 내일 까지 쉬어야 할 것 같다며 작별인사를 한다.

“야, 선생님이 안 보이시길래 못 뵙고 가시는 줄 알았습네다”

아프면서도 환하게 밝게 웃어 주던 영심이가 많이 아프지 않아야 할텐데.

다음 볼 땐 결혼 전에 그랬다고 했던 것처럼 더 살이 두둑하게 찐 더 건강해진 영심이를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선을 봤는데 언니가 아야 좋아해요 해서 인차 결혼할 거야요.”

영심이가 련희를 두고 한 말이다. 이제 다음에 가면 언제 결혼을 할 지 모른다는 련희를 비롯해 해방산 최고의 ‘입’이라 칭해도 손색이 없을 유머와 커피경연대회 1등이란 실력을 갖춘 해방산 최고참 ‘은동이’ 은주도 언제 시집을 갈지 모르고, ‘금동이’도 임산휴가를 가고 나면 금희 대신 1층을 관리할 수향이만 남을 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음에 백두산을 방문할 수 있게 된다면 늠름하게 삼지연호텔에서 근무하고 있을 샛별이는 볼 수 있겠다.

평양을 떠날 때는 신의주를 거쳐 단동으로 가는 국제열차를 탔다. 기차편도 만석이었다.

서울로 돌아와 며칠 뒤인 6월 3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역사적인 판문점 회담, 문재인 대통령까지 합석하는 3자 회동이 있었다. 반목과 대결의 상징이던 판문점이 화해와 평화의 상징으로 바뀌던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가히 세계평화를 향한 감동의 서사시라 표현을 하여도 부족함이 없을 그런 감격이 밀려왔다.

모두 한 자매들 같이 정겹게 언니 동생 하며, 그러나 초소를 굳건히 지키는 든든한 동무들로 해방산의 일터와 자기의 나라를 지키고 있을 우리의 딸들이 떠올랐다. (끝)

정기성 ‘6.15뉴욕지역위원회’ 부위원장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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