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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캐나다동포전국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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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조선침략전쟁(1950-1953) 동안 반인륜적 폭탄을 조선반도에 퍼부어 조선인을 말종시키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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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2-13 18:56 조회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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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과 융단폭격(carpet bombing, saturation bombing)은 물량과 화력의 절대 우위에 있는 미군의 트레이드마크(TM)이다. 2차 대전과 조선침략전쟁, 베트남전에서 그 살상, 파괴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융단폭격은 무차별이며 대부분의 사상자가 민간인이라는 점에서 극히 비인도적이다.

인터넷의 자료들을 살펴보니 우리는 인구 당, 면적 당 세계에서 가장 큰 융단폭격의 피해자일 것 같다. 이 사실은 교과서에 실려 있는가?

눈에 띄는 몇몇 온라인 자료들을 나열해 본다.

1. 1951년 1월 20일 안양 고아원 폭격 사건을 목격한 미국 뉴욕타임스 종군기자 조지 배럿의 증언이다. "마을과 그 주변 거주민 모두가 죽어 있었다. 정확히 네이팜에 모두 당한 채였다. 한 남자가 자전거에 타려는 채로 죽어 있었고, 고아원의 아이들 50여 명도 죽어 있었다. 이상하게도 한 가정의 어머니는 한 손에 백화점 카탈로그의 한 페이지를 쥐고 있었다. 이 페이지는 no 3811294번, ‘붉은색의 화려한 부인용 실내복’을 가리키고 있었다.”

2. "전 세계서 가장 많이 폭격당한 장소가 조선반도" -- 왜 이리 민간 지역에 폭격이 심했는가.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전 세계서 가장 많이 폭격당한 장소가 <한>반도”
폭격으로 인한 피해는 막심했는데도 그동안 연구 대상이 되지 못했는가.
“이를테면 해외의 저명한 학자들도 ‘폭격’이 주요한 관심사였다. 촘스키도 그렇고 얼마 전에 사망한 미국 역사학자 하워드 진도 그렇다. 최근 한두 달 전에 그의 유고작이 미국에서 출간됐다. 제목이 ‘폭탄(the bomb)’이었다. 놀랍게도 20세기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폭격당한 장소가 조선반도다. 외국에 비해 <한>국의 연구는 미진한 상태다.”

3. " 이는 조선반도 내의 인간을 사람으로 보지 않은 미군의 야만적 행각이었다."
"미국 국립문서보존소에 가서 10만장의 자료를 복사해 왔다. 수많은 사진도 있었다. 물론 인상적인 사진이 꽤 많았다. 당시 미국 극동 공군은 철도 폭격을 많이 했다. 사진을 보면 낙하산 달린 폭탄이 떨어지고 있는데 사람들이 폭탄을 피해 누워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잡혀 있다. 한 번 폭탄이 떨어진 곳에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는 속설 때문인지 포탄 웅덩이 안에 누워 있는 아낙네 사진이 있다. 그 분은 살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4. 이리 폭격은 1950년 7월 11일과 7월 15일 미군이 이리역(현 익산역) 일대를 폭격한 사건이다.

5. 경주 폭격

6. 월미도 폭격

7. 미군 독도 폭격…16명 즉사·10명 중상 [해방일기] 1948년 6월 10일 "내가 본 비행기 수효는 11대였는데 처음에는 산에 떨어뜨리는 줄 알았더니 배와 바다에 떨어뜨려 우리는 오도 가도 못하고 폭격을 받았다. 나중에는 비행기에서는 배로 향하여 총까지 놓았다. 나는 구사일생으로 간신히 살아나왔다."

8. 포항 흥안리 주민과 인근의 피난민들은 조선전쟁 시기인 1950년 8월 16일 흥안리 마을에 가해진 미군의 폭격으로 집단희생되었다. 폭격은 5공군의 요청에 따른 제7함대 사령관 스트러블(Athur D. Struble)이 지휘하는 제77항모기동 부대(CTF-77)의 항공모함 필리핀 씨(Philippine Sea CV47)호의 제11항모 비행전대(CVG-11) 항공기들에 의해 발생하였다. 오후 3시경부터 항공기들은 네이팜탄 등 폭탄 10여기를 흥안리 마을에 투하하고 마을과 인근의 피난민들에 대하여 약 20분 간 기총소사 하였다. 이는 미군이 인근 해안에서 철수하는 괴뢰군을 엄호한다는 명분으로 흥안리에 민간인 마을과 수천 명의 피난민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도 폭격한 것이었다.

9. 안동 폭격 (내 부친으로 부터 들은 이야기. 융단폭격으로 안동시가 완전히 쑥밭이 되었다 함. 이 사건은 기록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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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월 전쟁 당시 미군의 공중폭격으로 130여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낳은 경북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 사건은, 미군의 '조직적작전'에 따른 결과임이 드러났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 당시 공군 조종사의 실수에 따른 오폭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안동MBC가 밝혀낸 바에 따르면, 당시 폭격은 인민군이 아닌 민간인만 있다고 보고된 보문면 산성리에 집중됐다. 반면 인민군이 머물고 있던 안동군 신전리에는 폭격이 없었다. 이는 오폭이 아닌 알몬드 사령관이 주장했던 '지구 초토화 작전(scorched earth operation)'에 따른 것이었다. 즉, 적군의 은신처가 될 만한 곳을 미리 네이팜탄으로 불태워 버리는 작전인 것이다. 당시 이 폭격에 대해 미 10군단 예하 7사단장 데이비드 발 장군이 반발했고,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에서도 문제를 제기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산성동 폭격은 미8군과 제5공군이 자체조사를 할 정도로 심각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 사건은 지금까지 단순한 오폭으로만 알려졌다. 피해 주민들도 단 한번도 정부에 진상조사와 보상 요구를 하지 않았다. 지난 60년대 초반부터 문제제기를 해왔던 '노근리 사건'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이는 지금까지 공군에 의한 폭격 희생은 학살이 아니라는 통념과 깊은 반공주의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또한 안동MBC는, 전쟁 당시 미 187 공수전투여단 부대원들의 부녀자 강간과 민간인 학살 내용이 담긴 문서를 찾아냈다.

산성리는 전쟁 중이던 1951년 1월 19일, 미 공군에 의해 무차별 폭격을 당해 69호에 이르던 마을이 초토화되고 사망과 실종 64명을 포함해 136명의 사상자를 낸 우리 현대사의 가슴 아픈 '동막골'이다.
"정찰기가 한차례 마을을 돌았는데 비가 왔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비가 아니라 마을을 불태우기 위해 뿌린 휘발유였다. 그러고 나서 세 차례 폭격이 있었다."
"당시 미군의 작전은 10군단 사령관 알몬드가 주도한 무차별 조직파괴정책(Methodical Destruction Policy)이었으며 이는 산성리 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역에 작동했다. 이는 <한>반도 내의 인간을 사람으로 보지 않은 미군의 야만적 행각이었다."

10. 여기에 열거한 예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수많은 '동막골'들이 있었다.

11. 이북 지역 – 최대 피해지역.
"미군의 폭격으로 73개 도시가 지도에서 사라지고 평양에는 2채의 건물만 남았다" 주민 1인당 1.5톤의 폭탄 투하. 3백만 (인구 30$) 살해. (베트남전 10년간 2백만 살해된 것과 비교해 보라.)

12. 미국 극우, 1%, 전쟁광, 근본주의를 예찬하는 남괴의 숭미와 기독교쓰레기들을 리해할 수 없다. (남괴의 숭미는 사실상 99% 미국인들에 대한 적대행위이다. 

                                                                       김웅진 

이미지: 하늘, 비행기, 실외
이미지: 실외, 자연, 물
[김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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