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동포 아줌마, 남한에 가다-내 생애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여행> 9부-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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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202회 작성일 17-06-19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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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여행-9부>


가려지는 중대 뉴스

 

 머물고 있는 독자님댁으로 돌아오니 텔레비젼에서는 여전히 내 얼굴을 내보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특히 사람들이 쉽게 잊어버리는 습성이 있는 한국에서, 아무리 쇼킹한 뉴스도 1~2주를 넘어가질 않는 법인데 벌써 내 얼국ㄹ이 뉴스 화면에 나온지 대략 50일이 돼 간다. 대체 이게 무슨일인가. 놀라운 일이다.

 

 그 사이 ‘통진당 해산’이라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이야 말로 지속적으로 다뤄져야 할 뉴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사에 있어 정말 충격적인 사건인 ‘통진당 해산’ 뉴스는 흐지부지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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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한국에서 이 보다 더 큰 뉴스거리가 어디에 있었는가. 국민의 10퍼센트 이상의 지지를 받은 정당을 어떻게 해산시킨단 말인가. 국민의 지지율을 떠나, 한 정당의 생존은 유권자가 결정을 하는 것이지 국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시쳇말로 통진당이 ‘종북정당’이라는 말인데 인터넷을 통해 이 정당에 대해 대충 알아보니 내 짧은 지식으로 볼 때 통진당은 좌익정당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좌익과 우익을 판단하는 잣대중의 하나가 재산권, 특히 토지의 소유권을 제한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이 정당의 강령 어디에도 재산권의 제한에 대해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민족주의 성향마저 강하게 띄고 있으니 서구의 기준으로 볼 때 그저 중도우파에 해당하는 정당으로 판단됐다.

 

 이런 정당을 법원이 해산시키다니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 있어 ‘통진당 해산’은 얼마나 중요하고 충격적인 사건인가. 이런 뉴스를 제쳐두고 ‘한 재미동포 아줌마의 북한여행담’뉴스가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되다니 뭔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질종편

 

 일부 언론이 통일콘서트를 다루는 수준도 바닥을 헤멘다. 어떤 방송은 무속인을 출연시켜 내 관상을 보기도 한다. 내 얼굴이 ‘종북관상’이란다. 또 어떤 방송은 점쟁이를  출연시켜 이름을 풀기도 한다. 내 이름도 ‘종북이름’인 모양이다. 그리고 결혼때도 안 본 남편과의 궁합까지 봐준다. 내가 종북으로 밖에 될 수 없었던 궁합인가 보다. 이런 방송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나기 앞서 너무 저질스러워 민망하기까지 한 내 모국의 언론 수준에 얼굴이 화끈 거린다.

 

 이 방송국들은 허위보도를 한 뒤 평론가들을 출연시켜 나에 대해 저급한 비난을 퍼붓는다. 탈북자를 출연시켜 나의 북한여행에 대해 분석을 하기도 한다. 그들에 의하면, 북한의 무슨 부서에서 나를 특별관리를 한다고 한다. 또 내가 평양의 ‘초대소’라는 곳에서 머물렀을 거라고도 한다. 나는 평양에 가면 항상 고려호텔에 머문다. 그 외 ‘해방산호텔’에서 열흘 그리고 ‘양각도호텔’에서 하루를 머문적이 있다. 매일의 여정을 기록한 내 북한 기행문 연재나 책을 보면 그날 그날 어디서 머물렀는지 사진과 함께 자세히 기록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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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고려호텔, 201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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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고려호텔 객실, 2013 9

 

 그 탈북자에 의하면 ‘초대소’는 ‘공짜’이며 시설도 좋다는데 대체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 더욱이 ‘공짜’라니까 귀가 번쩍뜬다. 왜냐하면 우리 부부는 북한관광을 한 번 갈때마다 꽤 많은 비용을 들이기 때문이다. 비행기 요금, 북한의 ‘조선국제려행사’에 지불하는 요금, 또 쇼핑이라든가 개인적으로 필요한 돈 등. 열흘 기준 관광비용이 일인당 약 3백만원, 비행기 요금이 일인당 약 5백만원, 그 외 여러가지 비용을 포함하면 일인당 천만원이 넘으니 한 번 갈 때마다 이천만원 이상이 소요된다. 그런데 ‘초대소’라는 곳에 우리 부부가 머무르면 모든 게 ‘공짜’라니 적어도 ‘조선국제려행사’에 지불하는 돈은 절약할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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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지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있었던 관광 트레이드쇼의 북한 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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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말레이지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있었던 관광 트레이드쇼의 북한 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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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관광 선전 인쇄물

 

 북한에서 내 요청을 들어줄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번 북한에 갈 때는 꼭 ‘초대소’라는 곳에서 머물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해봐야겠다. ‘초대소’란 어떤 곳인지, 호텔보다도 시설이 더 좋은지, 사진과 함께 자세히 연재를 통해 독자님들께 보여드리고 싶다.

 

 심지어 그 탈북자는 방송에서 내가 북한으로 부터 적어도 5만 달러에서 10만 달러는 받았을것이라며 구체적인 액수도 제시한다. 북한이 한 해외동포 관광객에게 그렇게 많은 돈을 줄만큼 여유가 있는 나라란 말인가. ‘북한 정부가 돈이 없어 주민들이 굶어죽어 간다’는 평소 자신의 말과 배치되는 말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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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4월 평양에서 <심장에 남는 사람>을 부르는 필자

 

 방송은 또한 내가 북한 문화성의 초청으로 평양에서 공연을 했을 당시의 <로동신문>기사를 인용하며 내가 ‘수령님을 흠모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다’는 보도를 했다.

 

 2012 2월 북경에서 북한과 미국은 소위 2.29 합의라는 문서에 서명을 했으며 그 합의 내용중 하나가 ‘북한과 미국간의 문화, 예술, 체육등의 교류’였다. 그 때 나는 북한의 문화성으로 부터 초청을 받고 흔쾌히 승락을 했다. 당시 미국인들로 구성된 150명의 남성합창단도 함께 참가했다. 나는 <로동신문>에 난 기사를 읽어볼 기회가 없어 어떤식으로 보도를 했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어느 학교에서 음악을 공부했으며 어디에서 온 누구냐”는 <로동신문> 기자의 짧은 질문에 “남한에서 태어나 이화여대에서 학사 그리고 미네소타 주립대학에서 석사와 박사를 받았으며 지금은 가정주부로 캘리포니아에서 살고있다. 노래를 안부른지 10년이 되어 잘 안된다”고 답을 했을 뿐이다.

 

 얼마든지 <로동신문>은 “출연자들은 수령님을 흠모하는 마음으로 공연을 했다”고 보도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기사를 쓴 <로동신문> 기자의 말이지 내가 한 말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언론은 이를 인용하며 마치 내가 그런 말을 한 것처럼 방송에 내보내고 있었다.

 

 위에 열거한 이런 여러가지 허위사실을 어떻게 방송에 나와 버젓이 할 수 있을까. ‘종북몰이’에 관한한 무슨 말을 해도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인가. 나는 변호사를 통해 이 탈북자를 비롯, 방송에 출연해 나의 명예를 훼손한 평론가들을 고소했으며 현재 법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언론의 북한 악마화

 

이 방송들은 많은 시간동안 북한관련 뉴스만 내 보낸다. 아마도 북한이 없다면 이 방송들은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북한관련 뉴스라 해 봐야 대부분 사실에 의거하지 않은, 픽션에 가까운 ‘카더라’ 수준이다.

 

한국 방송에서 연속극만 봐 오던 나는 첫 북한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북한관련 동영상들을 유투브에서 찾아봤다. 방송의 내용이 내가 어려서 받은 반공교육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많은 것들이 내가 본 북한 그리고 북한동포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나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마음먹고 연재를 결심하게 된 이유중의 하나다. 물론 더 큰 이유는, 나와 평양의 수양가족과의 사랑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지만.

 

북한은 우리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나라이기에 방송에서 북한을 많이 다루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일부 언론의 지금과 같은 ‘북한 악마화’는 자제해야 한다. 사실에 의거한 보도와 비판이 ‘민족의 화합과 조국의 평화적인 통일’에 기여하는 것 아니 겠는가. 그리고 방송에서 북한의 가슴아픈 경제적 결핍을 희화화하는 것 또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왜냐하면 북한 동포들의 그런 궁핍한 모습은 ‘그들의 문제’만이 아닌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해를 넘기다

 

 ‘우울한’ 새해가 밝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잡혀있어야 한단 말인가. 나도 집에 아이들이 있고 살림을 하는 주부다. 차라리 어서 빨리 나를 재판에 회부해줬으면 좋겠다. 나도 법정에서 사실을 낱낱이 밝히고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단을 받고 싶다. 다만 출국정지를 풀어줘 집으로 돌아가 엄마를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을 사랑하는 아이들을 만나고 밀린 집안일을 챙길 수 있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 준다면 나는 내 개인 비용을 들여 재판이 있을 때마다 한국에 올 것이다.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을 알고 있는 독자들께서 보내 온 새해 선물이 나를 위로한다. 강릉에서 온 산 문어, 섬진강에서 온 돌게장, 울산에서 온 과메기, 완도에서 온 미역과 김 그리고 굴, 소래에서 온 꽃게장, 명란젓, 창란젓, 임진강에서 온 자연산 민물장어 등. 한 입 한 입 넣을 때 마다 울음이 북받혀 오른다. 그리고 통일을 염원하는 많은 분들이 계시다는 생각에 다시금 힘을 얻는다.

 

우리에게 안식처를 제공해 주고 계시는 부부께서 남편이 좋아하는 민물고기 매운탕을 먹으러 가자신다. 나는 얼굴을 머플러로 가리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따라 나섰다. 강변의 허스름한 식당인데 식당주인이 손수 잡아온 민물고기들이 수조에 담겨있다. 낚시를 좋아하는 남편이 수조를 들여다 보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한다. 나에게 일일이 물고기의 이름을 가르쳐 준다. 빠가사리, 메기, 미꾸라지, 참게, 뱀장어, 붕어, 끄리…. 민물새우로 우려낸 매운탕 국물이 정말 시원하다.

 

첫 북한 여행중 원산에서 먹었던 가물치 매운탕 국물이 생각난다. ‘남이나 북이나 우리의 입맛이 어쩌면 이렇게 똑 같을까’ 생각을 하니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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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월 원산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우리는 파주로 향했다. 도로 양옆으로 철조망이 쳐져있는 것이 보인다. 북한에 가까이 가고 있는 게다. 도착한 곳의 동네 이름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곳에는 서양식 카페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곳에서 멀지않은 휴전선 바로 넘어에는 우리식을 고집하고 그 바로 아래에는 이처럼 서구의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이 둘이 조화를 잘 이루어 문화발전을 이룩해 갔으면 좋겠다. 아시아에 그런 나라가 하나 있다. 아쉽게도 바로 일본이다.

 

 집으로 돌아와 텔레비젼을 켰다. 여전히 나에 대한 ‘중계방송’을 하고 있다. 경찰이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나를 검찰에 송치할 것이며 검찰은 기소유예후 강제출국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기소(indict), ‘불기소(dismiss)’는 알겠는데 ‘기소유예’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나 저나 아직 검찰에 송치도 안됐는데 언론은 ‘기소유예후 강제출국을 시킬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한국의 언론은 검경의 속내를 빤히 들여다 보고 있다.

 

 경찰만도 못한 검찰

 

 언론의 보도대로 나는 검찰의 소환을 받고 출두했다. 내가 서울지방검찰청에 나타나자 건물앞에서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카메라를 눌러대고 마이크를 들이댄다. 나는 기자들에게 마음속에 있는 말을 모두 토해내고 검찰청사로 들어섰다.

 

검찰청 조사실에는 속기사 한 사람이 있었으며 두 사람의 검사가 교대로 질문을 하고 밖에서는 부장검사란 분이 모든 지휘를 하고 있는 듯 했다. 경찰에서 받았던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한심한’ 질문들을 반복해서 묻는다. 강연 그리고 책과 연재에 나오는 ‘대동강맥주’, ‘핸드폰’, ‘북한의 강물’, 등등.

 

 참다못한 나는 검사에게 ‘제가 지금 언론의 허위왜곡 보도 때문에 이자리에 오게 됐는데 검사님 역시 똑같이 왜곡된 질문을 하시니 제가 어떻게 해야 할 지…, 정말 실망이 되고 당황스럽네요. 훌륭하신 분들께서 죄를 캐시기 위해 이런 질문들을 하시느라 정말 애쓰십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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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누군가 제 페북에 올린 사진인데 출저를 모르겠습니다. 써도 되는 건지….)

 

 어리석기 그지없는 질문들에 이어 이번에는 내가 강연장에서 부른 <심장에 남는 사람>이라는 북한노래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간다. ‘이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 아느냐, 지도자를 찬양하는 이런 노래의 배경 정도는 알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 심장에 남는이가 어쩌고 저쩌고…’ 숨도 안 쉬고 장황하게 훈시같은 질문을 한다.

 

 나는 검사에게 “이 노래는 한국의 많은 가수들도 부르고 또 음반을 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더니 검사님의 대답이 속된 말로 ‘돌아버릴’ 지경이다. ‘같은 노래라도 듣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관객의 질에 따라 노래의 질이 달라진다는 분석이다. 세상에 그렇게 어렵다는 사법고시를 합격한 수재들이 음악에 대해 이처럼 무식할 수가 있을까.

 

 나는 그 반대라고 설명을 해줬다. 노래나 연주는 듣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가 곡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감정과 기법으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말해줬다. 덧붙혀, “강연장을 찾은 사람들 중에는 어린 아이도 있고, 학생들도 있고, 가정주부 등 각양의 사람들이 있는데 검사님께서는 그들이 모두 ‘빨갱이들’이란 말을 하고싶으신 것이냐”고 반문했다. 검사의 논리에 따르면 예전 평양에 가 ‘원조 빨갱이들’ 앞에서 공연한 한국 가수들의 한국노래들은 모두 ‘이적 노래’가 되고 만다. 

 

 검찰은 경찰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것이라는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오히려 경찰의 수준이 더 높은 듯 하다. 적어도 경찰은 “노래란 듣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는 무지한 말은 하지 않았다.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경찰이 수사권을 갖고 있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 경험에 비추어 보니 검찰이 갖고 있는 수사권을 경찰에 돌려줘도 하등의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답없는 검사

 

 검사는 내게 ‘왜 북한의 인권문제라든가 또는 삼대세습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냐’고 묻는다. 나는 검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검사님은 외국여행을 가시면 그 나라의 인권문제 같은 걸 알아보러 다니시나요? 저는 북한문제 전문가나 학자로서 북한을 연구하기 위해 간 것이 아니라 관광을 간 거에요. 외국관광객들이 한국에 와서 쪽방촌을 찾아다니고 감옥이나 구경하고 데모장소를 찾아가 인권문제를 파악하고 다니나요?” 검사는 내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검사는 이어 내가 ‘종북인사’인 황선에게 이용당했다고 말한다. 즉 ‘당신의 의도는 그게 아닌데 황선에게 이용을 당했으니 이를 인정하라’는 것 같다. 나는 단호히 부인했다. ‘만일 주최측이나 황선씨가 내게 어떤 특정한 발언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거나, 그래서  내가 그들이 부탁한 발언을 그대로 했다면 그들에게 이용당했다고 할 수가 있겠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 그런 부탁을 한 적이 없다. 나는 그들과 청중들에게 북한에 대한 나의 관찰과 내가 보고 느낀 얘기를 했으니 오히려 내가 그들을 이용한 셈이 된다’고 반박했다.  

 

 동시에 내가 북한에도 이용을 당하고 있으며 내가 그 빌미를 제공한 것이 된다고 검사는 말한다. 아마도 이 사건을 북한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게 아닌가 싶다. 나는 검사에게 북한에 빌미를 제공한 것은 내가 아니라 한국의 언론이 아니냐라고 대답했다.

 

 나아가 나는 검사에게 ‘나를 이용한 것은 황선도 아니요 북한도 아니다. 정작 나를 이용한 것은 한국 정부다’라고 말했다. ‘한 때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내 책을 우수문학도서로 선정을 해 전국의 공공도서관에 배치하고, 뿐만아니라  통일부는나를 출연시켜 내 북한 여행기 다큐를 제작해 통일부 홍보 영상으로 사용하더니, 이제는 언론을 동원해 종북몰이를 하고있지 않은가. 나를 기소하려면 내 책을 우수문학도서로 선정해 배포한 문화체육관광부 그리고 나를 출연시켜 다큐를 만든 통일부도 함께 기소하라’고 말했다. 검사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내 기행문에 대한 북한의 독후감

 

 지금 한국에 와서 ‘종북몰이’를 당하며 검경의 수사를 받고 있자니 내 책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생각난다. 내가 기행문에서 언듯 언급했듯이 사실 북한도 내 기행문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은 두가지 이유에서 였다.

 

 하나는, 내가 기행문에서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남한의 박정희 대통령을 함께 거론 했기 때문이다.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금수산 궁전을 방문했을때 그곳을 찾은 북한주민들의 표정속에서 나는 그들이 김일성 주석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일성 주석의 서거 당시 북한주민들의 오열을 거짓으로만 생각했던 나는 그들의 슬픔이 진실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책 속에서 나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 당시에도 많은 국민들이 통곡하지 않았던가라며 북한주민들의 오열도 사실일 것이라고 썼다. 바로 이 부분이 문제가 됐다. “어떻게 김일성 주석을 일본군 장교로 독립군을 토벌하던 박정희 대통령과 비교할 수가 있냐”는 말이었다.

 

솔직히 이는 북한의 관점에서 볼 때 큰 불경을 저지른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예전 유신시대 남한에서도 어떤 여성 통일운동가가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을 비교했다 해서 몇년간 징역살이를 하지 않았던가.

 

또 다른 하나는, 내가 책속에서 북한을 “가난한 나라”라고 묘사한 점이다. 나는 책의 서문과 본문에서 “내게 북한은 어떤 나라냐고 물으면 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가난한 나라라고 답하곤 한다”라고 썼다. 이것이 문제가 됐다. ‘북한 인민들은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왜 당신은 가난하다고 썼냐’고.

 

 내가 수양딸 설경이의 집 방문을 부탁하기 위해 북한의 ‘해외동포위원회’ 부국장이라는 분을 만났을 때 그는 이 두가지를 지적했다. 그러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가운데 지나가는 얘기로 한 정도였다. ‘신선생이 남쪽에서 태어나 자랐고 또 지금은 미국에서 살고 있으니 이해한다’는 식으로 얘기하면서 말이다.

 

 지금 내가 검경의 수사를 받으며 이 난리를 겪고 있자니 도대체 ‘한국은 정말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맞기는 한건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9부 끝, 다음은 10부 에필로그 II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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