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문재인 정부에 크게 실망 … 8·15 공동행사 안하기로 결정” (김원백 푸른통일조국가꾸기운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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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997회 작성일 17-07-2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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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문재인 정부에 크게 실망 … 8·15 공동행사 안하기로 결정”

- 인터뷰 <릴레이 통일코리아> 첫 번째 - 김원백 푸른통일조국가꾸기운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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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과도 같았던 거대한 촛불의 물결을 거쳐 정권이 바뀌고 우리 사회도 뭔가 움틀대고 있다. 그 배경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감이 자리하고 있다. 변화는 누가 만들어내는 것일까. 정권이 변화를 말하고 추동할 수는 있지만 진행하고 완성할 수는 결코 없다. 상대방이 있는 남북의 화해와 통일은 더욱 그렇다. 남한에서만도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 때문에 심각한 갈등과 긴장이 빚어진다. 통일 분야에서 집단 지성이 꼭 필요한 이유다. 인터뷰 <릴레이 통일코리아>는 보수-진보, 유명-무명, 국내-국외 등 통일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들을 가감없이 소개하고 토론하고 공감하자는 취지다. 일종의 통일을 향한 마라톤인 셈이다. 몇 명이나 만날지 언제까지 할지 기약할 수는 없다. 다만 수년 또는 그 이상 걸릴 거라는 각오는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내는 물론 해외 동포와 외국인, 나아가 북한 사람들도 만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20여년 가까이 갈고닦았던 기자로서의 역량을 다 쏟아부어 보려 한다. 그렇게 만나고 써나가다 보면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중요한 건 그 자체가 통일의 과정이고, 그 과정을 통해 서로 이해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렇게 세월이 가다 보면 남북의 화해와 통일도 어느 새 우리 곁에 바싹 다가와 있을지 모른다.

 

푸른통일조국가꾸기운동 김원백 대표(68). 김 대표를 만난 건 지난달 방한했던 국제태권도연맹(ITF) 시범단의 국기원 공연에서다. 열띤 공연이 끝나고 공연을 지켜본 시민들의 의견을 묻고자 마이크를 들이댔던 사람이 김 대표였던 것이다. 놀랍게도 김 대표는 캐나다 교포였다. 조만간 방북 예정이라고 했다. 마침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북한의 입장도 궁금하던 차에 방북 후에 뵙자고 하고선 헤어졌는데 이메일로 연락이 온 것이다. 김 대표는 방북 일정을 마치고 지난 22일 입국했다. 김 대표를 만난 건 이틀 뒤인 24일 김포공항 근처 커피숍에서다.

 

캐나다 동포인 김원백 푸른통일조국가꾸기운동 대표. 김 대표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 북한의 입장에 대한 질문에 거침없이 의견을 피력했다. ⓒ유코리아뉴스

 

 

김 대표는 문재인 정부나 북한의 입장에 대해 거침이 없었다. 이 때문에 통일 관련 토론회에서 자주 부딪히기도 한단다. 반대쪽으로부터 ‘종북’이냐는 공격도 자주 받는다고 한다. 왜 그런 비판과 공격을 받는지는 인터뷰에 충분히 드러나 있다고 본다. 그의 입장이나 주장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잘 판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공감할 수도, 반박할 수도 있다. 그 자체가 통일의 과정이다. 그것이 <릴레이 통일코리아>의 취지다.

 

김 대표는 1976년 가족들과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한국과 북한은 자주 찾는 편이다. 괄호( )는 ‘필자 주(註)’다. 다음은 김 대표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이번에 북에 다녀오신 목적은?

난 2000년부터 북쪽에 나무심기 사업을 해오고 있다. 그동안 해오던 일들이 북한 정부에서 인정을 받아 작년에 훈장을 받았다. 그걸 북쪽의 <금수강산>이라는 해외 배포용 잡지사에서 두 번이나 취재해서 기사가 나갔다. 지난 2012년에도 나가고 그 전후에도 나갔다. 작년에 훈장을 받았는데 그 잡지사에서 지난 4월부터 저를 취재했다. 이번엔 다른 취재기자가 나왔다. 이 사람은 내 얘기를 처음 듣다보니까 내 스토리가 지난 18년간의 북한 산림사업이 자기들의 잡지에 소개할 범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한 거다. 그걸 책으로 쓰자고 해서 이번에 들어가서 그걸 마무리하고 나온 거다. 본래 저는 6·15 공동행사가 성사되면 들어가려고 사증(비자)도 다 받아놨다. 그런데 6·15 공동행사가 안되면서 그 날짜를 지나서 7월에 들어간 것이다. 이번에 북쪽에서 국제태권도연맹(ITF) 시범단이 왔는데, 그쪽과도 하는 일이 있다. 들어가서 그쪽과도 면담했다. 오는 9월 평양에서 열리는 ITF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초청장을 받았다. 9월 대회에 남쪽에서도 들어갈 사람들이 있어서 그걸 좀 도와주려고 하는데 남북관계가 꽉 막혀 있다 보니까 쉽지 않다. ITF에서 내 사증은 받도록 해줬는데 딴 사람들 것은 ITF가 결정을 못한다. 문재인 정부가 ‘스포츠나 민간 교류를 통해 남북 관계를 회복한다’고 했는데 북측의 장웅 IOC 위원이 돌아가면서 ‘좋게 얘기하면 천진난만하다’고 했다. 남한에서는 ‘정경분리’ 이러는데, 저기(북쪽)는 모든 게 일체한다. 스포츠고 경제고 교육이고 모든 게 일체한다. 그걸 생각하고 사람들과 대화해야 하는데 남한식 사고나 미국식 사고로 대화를 하려고 하니까 안되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꽉 막혀 있으니까 정치적으로 풀 것은 정치인들이 하겠지만 우리는 산림사업만 해왔던 사람이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북이 이젠 좀 제대로 돌아간다(경제가 활성화됐다는 의미인 듯). 저는 남쪽 중앙정부가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을 내년 2월 쯤으로 봤다. 정리하고 준비하는 데 그 정도 시간이 걸릴 거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일이 딴 쪽에서 터져나온다. 지방에서다(남한 지방정부 차원의 남북 교류를 의미하는 것 같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서 남북관계가 좋아질 것 같은데 장웅 위원의 얘기처럼 순진한 생각이라고 보나? 남북 관계가 진전이 안될 것 같나?

지난 4월 태양절(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 행사가 있었을 때 난 캐나다 대표로 갔다. 북에도 통일연구원이 있다. 지난 2월에 갔을 때는 통일연구원 위원장을 만났는데, 이번엔(4월엔) 실장이 나왔다. 그 친구가 우릴 위해서 현황 보고를 했다. 뭘 기대하는가 했더니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놓은 얘기가 자기가 당선되면 평양부터 가겠다고 했다. 북쪽에서는 그걸 굉장히 기대를 하고 있었다(문재인 당시 대선주자는 2017년 1월호 <월간 중앙>과의 ‘2017 대선주자 릴레이 인터뷰 - 도올이 묻고 문재인이 답하다’에서 “지금 당신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치자! 그리고 지금 북한도 갈 수 있고 미국도 갈 수 있다고 치자! 어딜 먼저 가겠는가?”라는 질문에 “주저 없이 말한다. 나는 북한을 먼저 가겠다. 단지 사전에 그 당위성에 관하여 미국, 일본, 중국에 충분한 설명을 할 것이다”라고 했었다). 내가 그 친구한테 그랬다. 지금 기대하는 건 좋은데, 이걸 알아둬라.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클 수 있다. 남쪽의 대통령 중에 당선된 뒤 미국에 안가고 평양부터 올 대통령, 지금 상황에서는 없다. 그렇게 하면 대통령을 못한다. 죽이든지 무슨 수가 난다. 그리고 내가 남쪽에서 들어오기 전에 중국 호텔에서 들은 게 있다. 뉴스에서 문재인 후보가 ‘북이 핵을 가지고 자꾸 위협을 하면 사드 배치를 강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걸 들었느냐고 물었더니 못들었다고 했다. 분명 문재인은 사드 배치를 반대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벌써 말을 바꾼다. 북이 핵을 가지고 위협을 하면 사드를 배치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절대 너무 크게 기대하지 마라. 그래야 실수를 안한다고 했다. 불행하게도 결국 그렇게 됐다.

 

-이번에 갔을 때는 어땠나?

이번에는 (문재인) 얘기조차 안했다. 굉장히 강하다.

 

-실망을 해서 그런가?

했지. 조평통(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나 <조선신보>(일본 조총련 기관지) 기사를 보면 강력하지 않나. 이명박-박근혜와 다를 게 없다고. 지금 상황에서는 8·15(공동 개최)도 안된다. 이건 처음 얘기하는 거다. 8·15 안된다. 잘해야 우리가 10월 24일 전민족대회를 얘기하고 있는데 8·15는 북에서 안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지금 악화되어 있는 거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어떤 사람은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얘길 한다. 그 얘기 맞다. 내년 2월에서 4월로 저도 본다. 그때가 되어야 제대로 (남북관계) 일을 할 수 있을 거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진짜 평양을 먼저 갈 결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자기가 한 말을 지켜야 한다. 그게 가장 큰 신뢰다. 빈말이면 하지 말았어야 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못 지킬 약속이라면 하지 말았어야 한다. 해놓고선 그렇게 안하니까 상대방에서 ‘어? 이렇게 나오네’ 하는 거다. 기대를 했는데 거기에 대한 실망이 큰 거다.

 

-그래도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완 다르지 않나?

지금 하는 걸 보라. 내가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첫 토론회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발제자들이 하는 얘기가 북에서 화성-12호 발사한 걸 ‘도발’이라고 했다. 그리고 청와대는 곧바로 안전보장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내가 그랬다. ‘아직도 북한은 자기 국방계획에 의해서 미사일 실험하는데 그걸 도발이라고 하느냐?’고. 남한을 향해 쏘는 게 아니지 않나. 왜 도발이라고 자꾸 북쪽을 몰아붙이느냐고. 남한도 사거리 800㎞ 짜리 현무를 쏘지 않았느냐고. 검찰총장 청문회 보니까 야당 의원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걸 4자 성어로 만들어 그게 무슨 뜻인지 묻더라. 후보자가 잘 모른다고 하니까 ‘그것도 모르고 검찰총장 하겠냐?’고 하더라. 자기가 만든 외래어로 물으면 남이 어떻게 알아듣나. 아무튼 내가 쏘는 건 괜찮고 북이 쏘는 건 도발인가. 새 정부가 들어섰는데 아직도 북을 때려서 없애 버리려는 주적으로 생각하나.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까 다들 세상이 바뀐 걸로 생각한다. 국민이 촛불 들어 바꾼 정권인데 박사라는 사람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아직도 북을 때려 없앨 주적으로 생각하느냐고 따졌다.

 

-너무 북한 쪽 입장을 대변하신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해외동포로써 남·북한 어느 한 쪽에 서면 내가 일을 못한다. 북쪽, 남쪽 다 자기들 쪽에 나를 세워보려고 했다. 남쪽의 힘있는 기관, 북한 대사 쪽은 옛날부터 다 만났다. 제일 처음에 보자는 데가 통일부였을 거다. 그리고 국방부 정보부장, 국정원, 이명박 때 청와대, 캐나다 주재 북한 영사, 중국 심양 주재 북한 영사 등 힘있는 기관들은 다 봤다. 자기네 뭘로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난 끄떡도 안했다. 북쪽도 마찬가지다. 자기네 걸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그랬다. ‘내가 하는 게 산림복구 사업이고 내가 또 캐나다 동포로써 북쪽도 내 조국이고 남쪽도 내 조국이다. 그런데 내가 한쪽에 서버리면 가치가 없다. 그렇게 알고 나를 만나라’ 이렇게 얘기했더니 반년 지나니까 북쪽에서 참사가 한 명 나오더니 ‘선생님은 민족주의자십니다’라고 했다. 내가 ‘그렇게 결론이 났어? 그럼 됐지’라고 했다. 북이든 남이든 내가 정보 주면 그걸로 모든 게 끝난다. 다른 사람들 중엔 한쪽에 서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해외동포로서의 역할은 중립을 지켜야 하고, 우리 민족이 다시는 전쟁 없이 평화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6·25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6·25 때 어떤 피해를 당하셨나?

아버지께서는 경찰 간부였는데 6·25가 발발하던 1950년 7월 13일 수원-안양간 전투에서 사망하셨다. 나는 그런 아픔을 가지고 있다. 감상적으로 통일 이루자, 한 민족이니까 통일 이루자, 이거 아니다. 우리 어머니, 누님, 형제들이 아버지가 전사한 사람으로써 6·25의 피해자로 살아봤기 때문에 다시는 내 자식들에게, 후손들에게, 우리 민족의 후손들에게 그 피해를 입히지 말자는 생각이 강하다. 지금까지 엄청난 말 못할 피해를 안고 살아왔다. 천안함 사건 때 이명박 대통령이 가서 46명의 전사자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어떻게 하는 것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는 일이겠나. 국방력을 더 강화해서 북쪽을 무력으로 더 누르든지 하는 게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하는 것인가? 결과를 보니까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기대했는데 결국 실망했다는 뜻인가?

저는 이명박 대통령 때 그 하는 말을 들으며 혹시나 막연하게 북쪽과 관계 개선할 거라고 기대를 했다. 그후로 되는 걸 보고 ‘역시나’였다. 그러면서 우리 어머니가 살아왔던 일생, 우리가 살아왔던 일생이 그대로 전가됐다. 6·25 전사자들을 추켜세웠는데 막상 우리 어머니가 재혼을 하니까 미망인으로서의 자격을 안줬다. 여자 한 명이 가족 5명을 데리고 산다는 게 그 당시의 남쪽 정서로는 굉장히 힘들었다. 새로 결혼한 의부는 우리를 위해 아무것도 안해줬다. 그게 남쪽의 정서였고 그런 상황에서 우리 5형제가 살아나온다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나. 나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영사관에서 나를 찾았다. 보훈처에서 보훈금을 지급한다고 해서 내가 서울 올 일 있어서 신청서를 써냈더니 보훈청에서 지급을 한다고 해서 갔다. 그때 5명에게 300달러를 줬다. 지금은 조금 올랐다고 하는데 한 달에 99만원이면 자녀 5명이면 20만원 미만이다.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도 20몇 만원씩 주지 않나. 그런데 끝까지 국가가 책임을 진다? 내가 그걸 보면서 그랬다. 정말 기대했다.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천안함 사건 이후에 현충일에 보훈 가족들 유전자 검사를 한다고 해서 내가 갔다. 유전자 검사를 하는데 내가 팀장인 중령한테 그랬다. ‘여보시오, 어디 가서 죽을 일 있으면 죽지 마라. 우리 어머니가 그러시는데 너희 아버지는 바보였다고. 아버지로서는 영광스런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한 몸을 산화했는데 그 부인한테는 바보였던 것이다. 자식들도 있는데. 내가 그랬다. 죽지 마라고. 나도 그냥 이게 재수가 없어서, 운이 없어서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됐나보다 하고 그렇게 일생을 살았다.

 

-아무튼 해외 동포로써 느끼는 고국에 대한 경험과 생각은 통일 과정에서도 중요할 것 같다.

해외동포가 어느 한쪽에 서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중국 동포들이 처음 고국에 올 때 굉장히 상처를 많이 받았다.

 

-어떤 상처?

처음엔 오지도 못했다. 연고자 있는 사람만 오거나 밀입국하거나 그랬다. 그때 남한에 오려고 중국에서 집 한 채 값, 아파트 한 채 값을 들여서 브로커한테 돈을 주고 불법 입국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도 어떨 때는 재수가 없어서 한 달 만에 걸리기도 하고 몇 달 만에 걸리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몇 년 버티기도 하는데 몇 달 만에 잡히면 그 돈을 갚을 길이 없다. 중국에 돌아가서 자살하고 폐인된 사람들이 많다. 김대중 정부 때 내가 청와대에 제안했다. ‘어차피 이 사람들은 (남한에) 와야 할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을 중국에서 보니까 남한에 오려고 굉장히 고생한다. 이 사람들을 추천을 통해 1년에 1만 명을 받아주면 5년이면 5만 명이다. 그렇게 해서 5년 비자를 주고, 이걸 로테이션 하면 몇 년이면 다 왔다가고 5년만 착실하게 한국에서 돈 벌면 돌아가서 집도 사고 땅도 사고 사업도 할 수 있다. 그냥 이대로 놔두면 동북3성 조선동포 사회가 다 무너진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통일할 때 저 사람들 숫자가 많이 필요할 때가 있다. 저 사람들 무시하면 나중에 가슴 칠 날 올 것이다’고. 그때 이미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이미 동포사회 다 무너졌다. 시골에는 고등학교 다 없어졌다. 중학교도 지금 없어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우리가 통일한다고 해도 그 사람들 지원을 못받는다. 중국 정부도 그걸 알고 한족들이 들어가서 땅을 헐값에 다 인수하고 있다. 그 사람들이 여기 와서 애국 할 것 같나. 아니다. 돌아간다. 차라리 여기 왔을 때부터 잘 대해줬으면 잘 됐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그나마 잘했는데 이미 중국동포 사회가 다 망가졌다.

 

-캐나다에 이민 가셔서 통일운동을 하신 건가?

아니다. 사업했다. 자식들은 절대 고생 안시키려고 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신 게 나한테는 한으로 남아 있다. 내가 결혼하기 전에 맹세를 했다. 내가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내 허리가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 자식들은 나같이 살지 않게 하겠다고. 캐나다에 가서 참 열심히 살았다. 사업에 성공도 했다. 그러다가 중국에서 집사람의 친척이 찾아서 중국에 갔다가 북쪽 동포들을 만나게 됐다. 그때가 1990년인데 평양에서 가지고 온 칼라TV로 연변TV방송을 보니까 ‘금이야 은이야’라는 북한영화를 방영하고 있었다. 그런 세월이 20여년 만에 확 바뀐 것이다. 북쪽은 계속 봉쇄돼 왔으니까. 미국이 앞장서서 봉쇄하고 있으니까 그렇다. 그리고 소비에트공화국과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북한이 교역 대상을 많이 잃었다. 그러다보니 어려움이 왔고, 90년대 중반에 4년 연속 자연재해가 왔다. 그래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정말 어려운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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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백 푸른통일조국가꾸기운동 대표 ⓒ유코리아뉴스

 

-최근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군사당국회담 제의했는데 남한에서는 ‘북한이 이걸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갈려 하는 것 같다’고 보는데(김 대표는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북한이 문재인 정부의 이 제안을 어떻게 보고 있다고 생각하나?

장 선생(장웅 위원)이 말을 했지 않나. 그것도 (원인의) 한 부분이다.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얘기를 해야지 지금 여기서(남한에서) 딴 짓 하고 별소리 다 내놓질 않나. 내가 북한 사람들한테 그랬다. ‘(새 대통령이) 미국 갔다 올 때까지는 대선 전에는 절대 핵실험이나 이런 걸 참아주는 게 선거를 좀 돕는 거다’라고. 그런데 선거가 끝나자마자 6일 만에 미사일을 쐈지 않나. 저쪽(북한)에서도 뭔가 느껴졌던 것 아니겠나. 그리고 자기들 나름대로의 계획표가 있는 거고. 즉흥적으로 하는 건 절대 아니다. 내가 알기엔 그렇다.

군사회담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대화다. 문제는 제의했다 안했다가 아니라 그걸 지킬 만한 힘이라고 할까, 그걸 가지고 있냐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도 솔직히 우리가 알기로는 처음엔 그러려고 하지 않았다. 북쪽에다 뭐라고 했냐 하면 ‘내가 사업가인데 통 크게 하겠다’고 했다. 북쪽에서 그걸 홀랑 믿었다. 5·24조치가 나오기 전에 미국도 그렇고 이명박 대통령도 그렇고 처음엔 ‘북이 한 게 아니다’고 했는데 갑자기 돌변해서 ‘북의 소행’이 됐다. 북은 절대 안했다고 한다. 누가 했다 안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런저런 증거들을 종합해볼 때 그건 분명 조작이고, 이쪽에선 그걸 해명을 못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오다보니 남쪽에서 손내밀었다고 북이 바로 받는다? 천만의 말씀이다.

 

-(남한의 대화 제의에 대해) 고민 중인 건가, 아니면 고민도 안하는 건가?

고민할 가치가 없는 거지. 저 사람들이 고민할 게 뭐 있나. 저 쪽에서 믿을 수 있는 확고한 것을 내놓고, 그걸 공식적으로 내놓기 힘들면 밀사를 보내라는 거다. 확고하게 지킬 수 있는 걸 내놓으라는 거다. 예전 이명박 대통령 때인 2008년 9월에 아들 결혼식 때문에 한국에 들어왔더니 남측 인사한테서 전화가 왔다. 청와대에서 좀 보자고 한다는 거다. 10월 2일로 날짜도 다 잡아놨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범굴에 들어가라고, 그래서 들어갔다. 비서관 2명과 행정관 1명이 나왔다. 질문이야 뻔한 거고, 내가 그랬다. ‘당신들, 이 대통령이 후보시절에 뭘 선언했나. 비핵개방 3000 아닌가. 그게 무슨 의미인지 당신들 모르나?’ 가만히 듣고 있었다. 비핵개방 3000이란 북이 핵을 포기하면 그 조건으로 외자 300억 달러 들여다가 10년 동안 북한의 GNP를 3000불로 올려주겠다는 것 아닌가. 북이 이걸 받을 수 있을 것 같은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고 그 다음해인 2008년 1월에 북에서 공동사설이 나왔다. 공동사설엔 39번을 ‘이명박 역도’라고 했다. 계속 비핵개방 3000을 걸고 나오니까 북에서 반발할 수밖에 없는 거다. 그게 얼마나 싫으면 그런 표현을 했겠나. 내가 비서관들에게 그랬다. ‘아직도 당신들이 그걸 표명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그걸 받아들이겠나. 비핵개방, 핵을 포기하면 살아남겠나? 재래식 무기는 북한보다 남한이 막강하다고 하는데 그럼 북한은 핵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탈출구가 핵개발이다. 거기에 모든 걸 들이부었다. 그런데 그걸 포기해라? 이라크, 리비아 대통령이 어떻게 되는지 다 지켜봤는데 그렇게 하겠나. 가다피도 그렇게 해서 당한 거 아닌가.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걸고서 얘기를 하자고 하면 그건 대화가 안될 얘기를 하는 것 아니겠나. 내가 역으로 질문을 했다. ‘만약 북이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돈 빌려다가 남한에 300억 달러 투자한다면 군대 무장해제 하겠소?’ 조용했다. ‘그게 바로 지금 당신들이 북에다가 요구하는 거다. 당신들이 할 수 있다면 내가 북에 올라가서 건의해 보겠다. 300억 달러 투자하면 군대를 다 없애겠다는데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라고. 당신은 하지도 못할 일을 남에게 하라고 하는 것은 대화 안하겠다는 얘기지,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그 다음 북에 올라갔다. 그쪽에서도 묻더라. 이명박 정권이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내가 그랬다. 이명박 대통령이 있는 한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내 경험으로 봐서 그렇다고. 실제 그 이후로 된 게 있나. 아무것도 없다. 오늘 방송국 관계자를 만났는데 예전 박근혜 후보 시절에도 만났었다. 그 당시 날 보고 하는 소리가 ‘박근혜는 그래도 이명박보다는 나을 거라고 북에 전해달라’고 했다. 내가 딱 한마디만 했다. ‘자기 아버지한테 배운 게 있는데 뭐가 낫겠소’라고. 북쪽에 갔더니 또 물었다. 박근혜가 어떨 것 같냐고. 내가 남쪽에서 오기 전에 이런 사람 만나 한 얘기를 그대로 전해줬다.

 

-북한의 문재인에 대한 평가는 어떤 것 같나?

아직은 시간을 줘야 한다. 내년 2월까지는 시간을 줘야 한다.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 대신 당국자회담 이따위 제안들은 다 무시당한다. 올 봄에 남한에 왔을 때 내가 남한 인사에게 그랬다. 북과 관계 개선하려면 제일 먼저 김련희라는 반납치된 연인, 12명의 종업원을 북송해야 한다. 그걸 해야지 북남관계가 풀린다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터뜨린 게 조평통, 조선신보 등에서 먼저 이들을 소환하라고 하는 것 아닌가. 군사회담 같은 큰 거 하자, 이런 얘기 안한다. 정서적으로 이런 걸 풀어야지 저쪽에서도 풀린다는 거다.

 

-남쪽에서는 법률적으로나 국민정서상 등 그들을 돌려보내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잘못 생각하는 거다. 인권문제 제기하려면 아무 소리 말고 이들을 돌려보내야 한다. 돌려보내놓고 ‘우리 이렇게 했다. 우리 민족끼리 싸우지 말자.’ 이렇게 해서 시작해야 한다. 처음부터 군사회담, 수뇌회담 이따위 얘기 하지 말고 작은 것부터 풀어가라. 12명, 13명 가족들을 갈라놓고 그렇게 아픔을 주면서 이산가족 상봉을 얘기한다는 게 말이 되나.

 

-문재인 정부에 시간을 주면 기대대로 갈 거라고 보는 건가?

그런데 헛소리는 하지 말자는 거지. 하려면 당당하게 하라는 거다. ‘내가 지금 이렇게 하지만 미국이 무서우니까 뒤로 돌려서 하겠다’, 이따위 소리 하지 말고 당당하게 하라는 거다. 우리끼리 왜 당당하게 못하나. 우리 민족끼리 화합하겠다는데 왜 미국 눈치를 보나. 내가 대통령이라면, 미국이 자꾸 태클 걸면 ‘너희들 빠져. 우리끼리 할 거야’라고 할 거다. 북이 지금 조선반도 절반을 가지고도 미국을 겁박하고 있지 않나.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러면 우리끼리 할래?’ 하고 서로 손잡으면 미국이 우릴 어쩔 수 있겠나. 그걸 할 만한 배짱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것 같나?

문 대통령은 사람은 참 좋은 분이라는 건 알았다. 그런데 ‘좋은 사람’이 과연 지금 분단된 이 위기의 대통령으로 적합할까. 그래서 내가 이명박 대통령 때부터 그랬다. ‘이제 민족의 대통령은 민족통일, 평화통일을 최우선으로 세우는 그런 리더십이 아니면 대통령을 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게 안되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깨진 것 아닌가. 문재인은 좋은 사람이지만 시대가 바라는 대통령인지는 잘 모르겠다.

 

-앞으로 남북 관계는 어떻게 보시나? 좋아질 것 같나? 아니면 기회가 완전히 지나갔다고 보시는 건가?

기회를 누가 만들 것인가를 얘기하는 것보다는 기회는 우리 민족에게 또 온다. 문제는 사대주의다. 지금 미국에게 사대주의를 하고 있다. 중국이 북쪽에 요구하는 건 자기들 통제를 받으라는 건데 북은 절대로 그렇게 안한다. 저 사람들은 고구려의 후예들이다. 저 사람들은 중국 대륙을 휘젓던 그 정신으로 중국 사람들을 우습게 본다. 지금 한반도는 3국 시대와 똑같은 판이다.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서 통일했듯이 남한은 지금 미국을 끌어들여서 통일을 하려고 한다. 그때랑 똑같다. 그러면 신라와 백제가 친한가. 그렇지 않다. 지금 전라도, 경상도가 계속 부딪히는 것 아닌가. 똑같은 상황이다. 그걸 또 반복할 것인가. 저 쪽(북한)은 고구려의 후예이기 때문에 절대 중국을 우습게 안다. 그건 사실이다. 소련이 무너지고 동구권이 붕괴되면서 4년간의 재해가 오고 미국이 봉쇄하니까 그 조그만 땅에서 어떻게 하겠나. 북한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만 해도 우리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민족이니까 살아남았지 다른 민족 같으면 다 무너졌을 거다. 그 열악한 상황에서 허리띠 졸라가며 졸린 눈 비벼가면서 그러면서 살아남겠다고 저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을 때려야 하니까 자꾸 미사일 개발을 하는 거다. 그런데 1만㎞, 1만5000㎞(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을 일컫는다) 미사일은 우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북한의 장사정포로 충분하다. 1만㎞, 1만 5000㎞ 고각 발사로 개발한 미사일은 미국을 겨냥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도발’이라고 한다. 우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 안타깝다.

 

-우리가 보는 남북한과 외국에서 보는 남북한은 좀 다른 것 같다.

내가 캐나다 갔을 때 들었던 참 창피한 얘기가 있다. 캐나다 사람들이 우릴 보고 뭐라고 하는 줄 아는가. ‘참 악독한 민족’이란다. 그때가 88올림픽 땐데 외국인들은 코리아가 어디에 붙었는지도 모른다. 올핌픽을 한다니까, 내가 코리안이라니까 코리아가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아직 분단되어 있다고 하니까 ‘되게 악독하다, 어떻게 몇 십년을 안만나고 지내냐?’고 했다. 글쎄, 요즘 젊은 세대나 통일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처럼 앞으로도 계속 갈라져 살겠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나. 인류학자 누군가가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없어질 나라는 남한’이라고 했다. 애를 안낳기 때문이다(인류학자 헤리 덴트는 한국은 앞으로 3년 내 인구절벽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고, 2015년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금의 저출산 현상이 지속될 경우 2136년엔 국내 인구가 1000만 명으로 감소하고, 2750년이면 인구가 완전히 소멸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리고 자꾸 다문화를 부추긴다. 우리가 다문화 민족인가? 우린 단일민족이다. 그런데 지금 방송에서 다문화를 자꾸 부추기는 건데 이해할 수가 없다.

 

-대표님의 시각은 현재 남한의 기준으로 보면 편협한 민족주의로 비쳐질 여지가 많은 것 같다.

나는 토론회 같은 데 가면 통일 전문가, 북한 박사라는 사람들과 종종 부딪힌다. 그들은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하는데 내가 들어본 바로는 합리적이지 않다. 그렇게 공격하면 나를 종북으로 모는데 난 종북이 아니다, 난 종(從)민족이다. 종민족을 안하면서 통일 안하겠다? 그게 반민족이다. 우리 민족이 평화통일 하자는데 그걸 안하겠다고 하면 반민족 아닌가. 내가 예전에 이석기나 이정희 사건 들었을 때 사람들에게 ‘왜 종북으로 몰리나?’라고 따졌다. 사실 그 사람들은 민족주의자들이다. 월남 통일을 보면 숙청 등을 다 거쳤다. 누가 해도 그 과정을 다 거쳐야 한다. 피해 본 적이 있어야 한다. 물론 공산주의에서는 사람들을 죽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통일이 된 베트남은 지금 세계 최고의 투자처가 되어 있지 않나. 난 베트남이 통일되고 난 뒤인 1990년에 베트남엘 갔었다. 기독교 교단 쪽에서 알아봐달라고 해서 갔었다.

 

-교회 쪽과도 같이 사업을 하시는 건가?

같이 사업하는 건 아니다. 나도 교인이니까. 나도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이다. 아들은 캐나다에서 현직 목사다. 베트남에 1주일 정도 있었는데, 호텔인데도 굉장히 발전이 낮았다. 5성급 호텔인데도 지저분하고 가난했다. 시장에 가면 파리가 펄펄 날렸다. 내일이면 출국하는 날인데 뭔가 자꾸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뭐냐 하면 그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동족상잔의 살육은 더 이상 없다는 것 때문이다. 내가 그러면서 책을 쓰고 싶었다. 평소 글쓰고 하는 걸 안좋아하는데 책이 쓰고 싶을 정도였다. 책 제목도 떠올랐다. ‘가난한 평화’라고. 가난하지만 그 평화가 부러웠다. 내가 6·25 피해자이기에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만약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어느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고 한순간에 수천만이 죽는다. 우리는 석기시대로 돌아갈 그런 운명을 안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민족끼리 싸워야 하겠는가. 아직도 그 생각을 해야 되겠느냐 이거다. 이쪽에서 세게 나가서 (북한) 정권을 뒤집어? 그건 어림도 없는 거다. 대화, 소통해서 평화통일로 가는 것, 그것 하나밖에는 없다. 급하게 통일을 해선 안된다. 15년 전 북쪽 사람들이 나한테 ‘선생님, 통일은 언제 될 것 같습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 내가 그랬다. 통일은 앞으로 30년 후의 일이라고.

 

-그때는 노무현 대통령 때이고 한창 남북 교류할 때 아닌가?

아마 그럴 거다. 김대중 때인지 노무현 때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지금 그때 북쪽 사람들을 만나면 ‘아, 우린 그때 통일되는 줄 알았습니다’라고 한다. 내가 쓰고 있는 책에도 이런 얘기가 다 나온다. 다들 김일성종합대 나온 똑똑한 사람들인데 단 둘이 있을 때 그런 얘기를 한다. 왜 적화통일 하고 싶어? 남쪽은 흡수통일 한다는데 그러면 서로 싸울 수밖에 없는 거야. 6·25는 우리 전쟁이 아니야. 민족 전쟁(civil war)이 아니야. 강대국이 한반도에서 벌인 전쟁이지. 우리는 전범국가가 아니야. 독일은 전범국가니까 동서로 갈랐지 왜 일본은 전범국가인데 안 가르고 왜 우리를 갈랐나. 미국이 우리가 아닌 일본을 갈랐으면 왜 우리가 전쟁을 했겠나. 안그랬으면 우린 어떤 식으로든 통일이 되어 있었을 거다. 월남은 통일을 했는데 세계 최고의 투자국가로 떠오르지 않나. 이념과 사상은 가치가 없다. 이미 소련이 붕괴됐기 때문에 지금 아무 것도 없다. 중국도 시간 문제다. 왜 우리는 아직도 이 따위 짓을 하고 있는가. 피해도 안당해본 사람들이 괜히 피해망상증 병자들 같다. 남한 사람들과 ‘북쪽’ 얘기를 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브루스 커밍스가 얘기했듯 ‘6·25는 1950년만 볼 게 아니라 이미 1940년에 루즈벨트가 조선을 일본에서 인수하면 50년 신탁통치 하겠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그때부터 미국은 우리나라를 타고 앉으려고 계획을 했던 거다. 이런 얘기 자꾸 하면 나보고 빨갛다고 얘기하는데, 난 빨간 사람이 아니고 난 민족주의자다.

 

-남북화해와 통일을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난 나무를 심는 사람이다. 너무 북한 산림이 황폐화되어 있으니까 그 일을 하기로 한 거다. 남쪽 사람들이 북이 원수라는 생각을 버리고 대화를 통해 민족이 하나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북은 우리의 원수가 아니라 같이 살아가야 할 동포라고 생각하고 정치하는 사람보다 한 발 더 나아가서 대화하고 민족이 같이 살 길을 찾아야 한다. 동포이기 때문에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 그 자세를 가져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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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백 대표가 지난 18년간의 북한 산림 복구 사업에 대한 공로로 지난해 북한 정부로부터 받은 훈장을 보여주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김 대표는 작년에 북으로부터 받았다는 훈장을 보여줬다. 핸드폰에 사진으로 보관돼 있었다) 북한에서 훈장 받았다는 이야기를 소개해도 괜찮나?

상관없다. 정권이 바뀌기 전에 내가 훈장을 받은 걸 어느 언론사에 알렸더니 이걸 기사화하긴 어렵다고 했다. 국가보안법에 위반될 수 있다는 거다. 말이 안되지. 이건 내가 빨갱이 노릇해서 훈장 받은 게 아니고 산림복구 사업 해서 훈장받은 거다. 산림복구는 이명박도 하려고 했던 거다. 천안함 사건이 잘못 풀리면서 그렇게 된 거다. 이건 우리 민족의 대사업이기 때문에 내가 국정원 사람들한테도 그랬다. ‘당신들, 이북에서는 날 애국자라 부르는데 왜 날 애국자라 안불러? 내가 한쪽 정부를 위해서 하는 거야? 통일되면 우리 민족의 것이야’라고. 북쪽에 가서도 그런다. ‘나무에 이념이 있어 사상이 있어? 그냥 가져다 심는다’고. 우리는 당당하게 터놓고 얘기하고 일한다. 남쪽에서도 아마 날 보고 그럴 거다. ‘저 사람이 위험인물은 위험인물인데 우리한테 해가 될 사람은 아니다’ 그렇게 판단하는 것 같다. 난 민족을 반하는 얘기는 안한다. 민족은 옳다.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반민족, 반통일은 안한다. (기사출처/재미동포전국연합회 via 유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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