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동포 아줌마, 남한에 가다-내 생애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여행> 11부-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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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108회 작성일 17-08-0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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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비극은 이억만리에도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하니 또 한 번의 소동이 인다. 나를 환영하기 위해 나온 단체분들과 나를 비난하기 위해 나온 단체분들 사이에서 고성이 오간다. 그 중 보수단체 측 한사람이 폭력을 휘두르다 경찰에 체포가 된다. 아수라장이다. 민족분단의 비극이 이억만리 이곳 미국에도 고스란이 젖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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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폭력을 휘두르다 경찰에 체포되는 보수단체 회원 (이 사진은 누군가 제 페북에 올린 사진인데 출저를 모르겠습니다. 써도 되는 건지….)



공항을 빠져나온 나는 남편과 함께 우리 교회의 목사님 차량에 올라 교회로 향한다. 그리고 도착하자 마자 김기대 담임목사님의 인도로 기도를 드린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하나님,  오늘 당신의 귀한 딸이 모진 박해를 견디고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

 

 주님께서 죄 없이 십자가에 달리셨던 것처럼 평화를 선포하다가 고초를 당한 신은미 자매를 주님께서 위로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민족의 막힌 담을 허물기 위해 고국에서 애썼던 그 모든 노고들이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을 확증하여 주시고 앞으로도 평화의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은둔의 나날

 

 

미국으로 돌아온지 며칠이 지나 친지분들이 ‘위문’을 오셨다. 우리는 그 분들께 식사 대접을 해드리기 위해 동네에 있는 한 일식집으로 갔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하자 음식점 주인이 말한다.

 

 

 

“신 선생님의 팬이라는 어떤 손님께서 음식값을 내고 가셨습니다. 저희도 지난 두 달 내내 식당에서 선생님의 뉴스를 보며 영업을 했어요. 선생님 정말 장하세요. 저는 평소 선생님의 스타일로 볼 때 선생님께서 조국과 민족뭐 그런 곳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신 분인 줄 감쪽같이 모르고 있었지 뭐에요. 선생님 정말 멋있고 훌륭하세요.

 

 

 

나는 누군가가 음식값을 내준 일 그리고 음식점 주인의 나에 대한  예찬에 기뻐하기 앞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미국에서 마저 사람들이 나를 알아본다는 사실에 문득 걱정이 앞섰다. 이 일이 있은 후 나에게는 일종의 ‘대인기피증’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외출을 꺼리고 집에만 머물렀다. 장도 남편이 혼자가서 본다.

 

 

 

허위보도로 나를 곤경에 빠뜨리고 국민을 오도한 일부 언론사들이 여전히 인터뷰를 하자며 국제전화를 해댄다. 아직도 인터뷰 하여 허위보도 할 것이 남아 있을까. 나는 일체 응하지 않았다.

 

 

 

한 종편방송은 아예 카메라맨과 기자를 미국에 보내 우리 집 방문을 시도한 모양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들어오려면 일종의 검문소같은 곳을 통과해야 한다. 방문객이 검문소에 이름과 방문목적을 말하면 검문소는 우리집으로 전화를 해 들여보내도 좋을지 허락을 요청한다. 그러니 아마 시도도 못해보고 돌아갔을 것이다. 대신에 그 종편방송은 다른 집의 창문을 촬영해 마치 우리집 창문인 양 화면에 내보낸다. 커튼으로 가려진 창문의 모습이다. 이 방송국은 이제 미국에 와서까지 우리 집에 대해서도 허위보도를 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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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월 집에서 예배를 드리는 필자   




오늘은 주일이다. 우리 교회의 40주년 기념예배가 있는 뜻깊은 날이다. 그런데 기자들이 교회로 올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집에서 예배를 드렸다. 혼자 피아노를 치면서 찬송을 부르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우리 민족이 사랑으로 하나되는 평화적인 통일을 염원하며….

 

 

재기

 

 남편의 얼굴을 보니 많이 수척해 있다. 나도 체중이 무려 15파운드나 줄어 몸에 맞는 옷이 없을 정도다. 평소 요리가 취미인 남편이 온갖 산해진미를 만들어 준다. 

 

한식, 일식, 중식, 태국식, 이탈리안, 프렌치 등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끼니 때 마다 마련해 준다. 김치, 깍두기, 동치미마저 담가준다. 그동안 잃었던 식욕이 조금씩 살아난다. 아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의 체중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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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미를 담그는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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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를 담그는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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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만드는 스시


진정한 용서

 

 

미국으로 돌아온 지 3주가 되어간다. 오늘은 서울에서 반가운 손님이 오셨다. 폭발물 테러가 있었던 전북 익산에서의 ‘통일 토크콘서트’를 주최하신 원광대 이재봉 교수님께서 미국 순회강연 중 며칠 함께 계실 예정으로 우리 집을 찾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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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순회강연 중 집을 찾아주신 원광대학교 이재봉 교수님과 함께  


남편에 의하면, 당시 남편 바로 옆자리에 함께 앉아계셨던 교수님의 머리에 불이 붙고 옷이 타들어 갔다고 했다. 아직도 화상을 입은 왼손엔 붕대가 감겨 있다. 민족의 화합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식사중 이재봉 교수님께서 놀라운 제안을 하신다.

 

 “신선생님, 혹시 익산에서 폭발물을 던진 그 청년을 양아들로 맞으실 수 있겠습니까?

 

 평화주의자인 이재봉 교수님 다운 제안이다. 잠시 생각을 한 후 나는 말했다.

 

 “그 청년은 범행을 저지르기전 SNS상에 신은미 폭사당했다고 들리면 난 줄 알아라’는 글을 올렸다고 합니다. 자기가 죽이려고 했던 사람을 양어머니로 모시겠다고 한다면 충분히 반성을 하고 새사람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

 

 이재봉 교수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만일 익산테러 사건이 하등의 의문도 없이 모든 것이 낱낱이 밝혀지고 그 청년 또한 깊은 뉘우침과 함께 나를 양어머니로 맞이하겠다면 나는 그를 기꺼이 양아들로 받아들일 것이라 말씀드렸다. 나는 오늘도 그 청년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영원한 가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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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찬송하며. 왼쪽부터 이모님, 어머님, 필자

 

 

한국으로 부터 친정 어머님께서 대구에 사시는 이모님들과 함께 미국의 우리 집에 오셨다. 일부 언론의 허위 왜곡 보도를 들으시곤 "다시는 보지 말자"시던 어머님, 그리고 이모님들께서 멀리 미국까지 저를 찿아주시다니…, 오랫만에 가족이 모여 예배를 드렸다. 분단으로 인한 우리 민족의 상처를 사랑으로 치유하고 하나되는 조국의 평화로운 통일을 한 마음으로 기도 드렸다.

 

 

장로교 신자들이며 기독교 원리주의자라 할 만큼 보수적인 신앙을 갖고 계신 외가 식구들이 북녁 동포들의 안녕과 조국의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 함께 기도를 하시다니! 우리 가족이 합심하여 '민족의 화합과 조국의 통일'을 위해 기도해 보긴 난생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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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그리고 막내딸과 함께 샌디에고에서



나는 어머님과 이모님들을 모시고 샌디에고에서 대학을 다니는 막내딸의 기숙사를 찾았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모국에서 이번 사건을 겪으며 나를 가장 아프게 한 것은 다름아닌 어머님의 의절 선언이었다. 여차했으면 언론의 허위보도로 말미암아 모녀의 관계까지 끊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북에서 온 편지

 

 

북한의 수양딸 김설경으로 부터도 수양손자 주의성의 돌사진과 함께 장문의 편지가 왔다. 북한에서도 그간 한국에서 있었던 통일콘서트 사건을 자세히 보도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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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수양딸 김설경, 수양손자 주의성, 수양사위 주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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