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일본의 원자탄개발책동의 흑막을 파헤친다(3) 비밀리에 감행된 극악한 조선인살륙만행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899회 작성일 16-10-25 22:22

본문

 

주체105(2016)년 10월 25일 로동신문

 

과거 일본의 원자탄개발책동의 흑막을 파헤친다(3)

비밀리에 감행된 극악한 조선인살륙만행

2b993e09d6dd814b55da5cdfe0f77b3e_1477448444_1762.jpg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 사진출처/위키페디아) 재캐나다조선인동포 전국연합회 

 

20세기 전반기에 우리 나라를 군사적으로 강점한 일본이 식민지통치를 실시하면서 조선사람들의 고혈을 얼마나 악착하게 짜내고 어떻게 잔인하게 학살하였는가와 같은 범죄적만행자료들은 이미 신문, 통신, 방송을 비롯한 여러 출판보도수단들을 통하여 많이 공개되였다. 그러나 그 자료들은 과거 일본이 저지른 조선인착취와 살륙만행의 전부가 아니다. 아직도 흑막속에 묻혀 세상에 공개되지 못한 자료들이 헤아릴수 없이 많다.

일제가 원자탄개발비밀계획실행의 기본거점으로 삼았던 우리 나라 북부의 흥남지구에서 감행한 범죄적만행들도 그중의 하나이다.

이번에 과거 일본의 원자탄개발책동의 흑막을 파헤치면서 일제가 어떤 범죄적만행들을 저질렀는가에 대한 조사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일제의 만행들을 립증할수 있는 생존자들이 한명도 없었기때문이다.

원인은 일제가 원자탄개발을 위해 동원하였던 조선인로동자들을 모두 학살한데 있었다.

일제가 원자탄개발비밀을 숨기기 위해 얼마나 교활하게 책동하였는가 하는것은 《아연공장》(《NZ》공장)을 건설할 때 로력을 현지주민들이 아니라 다른 곳들에서 온 사람들로 충당하고 그들의 고혈을 악착하게 짜낸 다음 모두 학살한것을 통해서 잘 알수 있다.

당시 흥남지구에는 전기, 화학공업을 중추로 하는 일제의 군수공업이 기본을 이루고있었다.

1930년대 후반기에 들어와 일제는 흥남에 알루미니움공장, 마그네시움공장, 카바이드공장 등을 대대적으로 신설확장하였다. 그리고 이 공장들에서 일할 로동자들을 조선의 곳곳에서 강제적으로 끌어왔다.

1970년에 일본인 가마다 쇼지는 자기가 쓴 도서 《북조선에서의 일본인고난기-일본질소공장의 최후》에서 《〈NZ〉공장건설명령을 받은 후 다른 공사들을 모두 중지하고 력량을 여기에 집중하였다. 필요한 작업을 위해 전조선적으로 인력을 모아 설비건설을 다그쳤다. 그밖에 부족되는 로력을 충당하기 위해… 학생 약 2 000명을 동원하였다. 형무소의 수인 1 000여명도 동원시켰다. 전쟁말기 흥남지구 여러 공장들에서 일하던자는 모두 4만 5 000명에 달하였다.》고 밝혔다.

흥남의 어느 한 화학공장만 보더라도 1932년경에 5 600명이던 로동자들이 1936년경에 8 000여명, 그후에는 1만여명으로 늘어났다. 일제패망직전까지 이 지구 군수공장들은 물론 그밖의 각종 공장, 기업소들과 항만 등에서 일한 로동자수는 10만명을 헤아렸다.

일제가 원자탄을 개발하기 위해 세워놓은 《아연공장》은 1941년경부터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그 건설에 숱한 조선인로동자들이 동원되였다.

일제가 조선사람들에게 얼마나 혹독하게 강제로동을 강요했는가는 원자탄개발과 관련된 한 공장에서 과장을 하였다는 일본인 오시마 미끼요시가 남긴 자료의 한토막을 통해서 잘 알수 있다.

그는 《매일 동원할수 있는 최대수자를 충당하였고… 각성제를 먹이면서 밤새껏 일시켰다. 당시로서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였다. 공장로동자들은 이렇게 1개월이상 일하면 모두 죽고말것이라고 말하였다.》라는 글을 남겼다.

흥남에서 살고있는 한 주민은 《일제놈들이 〈NZ〉공장을 건설할 때 이 지역 로동자들이 아니라 주변지역들에서 온 일공로력을 많이 썼는데 한주일간 로동자들을 일시키고 집에 보낸다고 하면서 배에 태워가지고 가다가 물에 빠뜨려죽였다. 비밀보장때문에 그랬다.》라고 폭로하였다.

일제가 다른 지역들에서 온 날품팔이군들을 많이 쓴것은 그들을 모두 조용히 학살해도 의문을 품거나 진상을 밝히자고 할 사람들이 없기때문이였다. 일제는 원자탄개발과 관련이 있는 어느 한 공장에서도 중요설비를 다 설치한 다음 그에 동원되였던 조선사람들을 100% 학살하였다고 한다.

이번 조사과정에 일제가 철저한 비밀에 붙였던 《아연공장》에서 원심분리법에 의한 우라니움농축연구와 함께 중수감속제에 의한 원자로를 건설하고 플루토니움추출을 시도하였다는 증거들을 일정하게 걷어쥘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안에서 사람들을 어떻게 살해하였는가 하는것이다.

현지주민들은 자기들이 보고 느낀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왜정때 건설한 건물이 두개 있었는데 하나는 단층이였다. 그 건물은 벽두께가 매우 두꺼웠다. 해방후 여러해가 지나 ××강좌실로 리용하였는데 1년에 1명씩은 죽었다. 그리고 거기서 잠을 자면 메스껍고 토하고… 그래서 분명히 그 건물에서 방사능이 센 물질을 다루었을거라고 생각하였다. 그 건물밑에 지하통로가 있었는데 그앞의 건물과 련결되여있었다. 그 앞건물은 사체실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사람이 죽으면 지하통로를 통해 사체실로 날라갔다고 보아진다. 그리고 1970년대에 우리가 교사건설을 하는데 앞에 굴뚝이 몇십m 잘되는게 있었다. 그을음이 있는것을 보아 리용한 흔적이 있었다. 그런데 모두 이상해했다. 여기에 왜 굴뚝이 있는가. 보이라굴뚝도 아닌데? 지금 생각해보니 사체실에 있는 시체들을 태웠을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일제는 원자탄연구와 개발에 광분하면서 비밀을 알수 있다고 생각되는 조선사람들은 모두 학살하였다. 바다물속에 빠뜨려죽이고 불에 태워죽였으며 방사선피해를 입혀 살해하였다.

일제가 원자탄개발을 위한 비밀계획실행의 기본거점을 조선반도로 삼은것으로 하여 우리 나라가 해방된 이후에도 흥남지구에서는 적지 않은 조선사람들이 방사선피해를 입고 일찌기 사망하는 비극적인 일들이 생겨나군 하였다. 우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강좌실에서 1년에 1명씩 사망하였다는 사실은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준 방사선피해가 얼마나 엄중한가를 웅변으로 실증해주고있다.

그곳만이 아니다. 어느 한 기업소의 일군은 자기가 일하는 곳에서 어떤 불상사들이 자주 생겨났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동력직장에 자리잡고있었던 3층 초급당비서실(당시)에서는 2002년 이전에 사업하던 비서들이 나이 60살이 되기 전에 사망하군 하였다. 10번째 임명된 비서가 사업후 1년만에 입원하게 되자 해당 기관에 의뢰하여 검사를 진행한 결과 매우 위험한 수치였다. 그래서 초급당비서사무실을 다른데로 옮기고 해당한 방은 연판으로 둘러막아 방사선을 차단하였다.》

이것이 바로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대대손손 입혀온 방사선피해의 일부이다.

일본!

우리 군대와 인민은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끓어오르는 증오와 분노를 금치 못하군 한다.

우리의 가까이에 있으면서 조선민족에게 너무나 엄청난 죄악만 들씌운 적국, 우리와 이웃이 되기를 완전히 포기하고 과거죄악을 미화분식하면서 한사코 대결하는데만 미쳐날뛰는 백년숙적이 다름아닌 바다건너에 있는 일본이다.

다시한번 되새겨본다.

우리 나라를 군사적으로 강점한 일제가 조선사람들을 살해한 수는 100여만명, 각종 공사장들과 전쟁터로 끌어간 수는 840만여명이다. 그리고 조선녀성들을 유괴랍치하여 성노예로 전락시킨 수는 20만명이다.

우리는 과거 일본이 조선반도에서 감행한 극악무도한 이 죄악의 력사에 원자탄개발시에 저지른 범죄행위들도 또박또박 첨부해놓는다.

절대로 잊지 않을것이다. 대를 이어가며 전해갈것이다. 그리고 기어이 그 모든 죄과를 피로써 결산할것이다.

리경수 

추천 0 비추천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2016-2017 KCNCC(Korean Canada National Coordinating Council). All rights reserved

E-mail : kcncc1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