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의 주궈ㄴ 은 어디서 나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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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카나다동포련)
미군통신부대 탄피 줏으려 갔다가 희생된 어린이 5명
꽤 오래전 사건이다.
1991년 3월26일에 일어난 사건이다.
그 날은 지방선거로 인한 남(한)녘 임시공휴일이었다.
당시 대구 성서초등학교에 다니던 우철원 군(당시 13살, 6학년, 1979년생)을 비롯한 조호연(당시 12살, 5학년, 1980년생), 김영규(당시 11살, 4학년, 1981년생), 박찬인(당시 10살, 3학년, 1982년생), 김종식(당시 9살, 3학년, 1983년생) 등 5명의 아이들은 대구시 달서구 이곡동 와룡산에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 이후 이들은 와룡산에 오르기 전 마을 주민에 두어 번 목격됐다. 이것이 아이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들은 수시로 산에가서 탄피를 줏어 팔아서 과자를 사먹기도 하였던 어린이들이었다
그러던 그들이 미군통신부대의 훈련장에서 군인의 의도적이 었는지 실수(?)인지는 몰라도
한 명이 죽었다. 그 것을 본 어린이들이 있었다. 그것을 본 어린이들을 미군은 그냥 둘 수 없었다.
만약 미군이 그렇게하였다고 소문이 난다면 얼마나 끔찍 할까?
미군과 남(한)정부는 위험에 직면하였다 그 사건을 잘 해결하지 못하면,
반미운동이 일어날 것이 분명하였다. 그 사건을 호도할 목적이 당연히 생겼다
그래서 미군들은 어린들을 옷으로 목을 조르고 여러 방법으로 모두 죽여버렸다
그리고 그 곳에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어느 포크레인 인부가 공사를 하다가 이상한 물체를 발견하여 신고하였다
그 시신을 검사한 경북대 의사는 그 것이 탄환에의한 구멍임을 밝혔지만
달서서장 김용판은 추위에 인한 자연사임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그 수사가 미군과 관련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그 사건은 남조선 국가 권력이 깁숙하게 관련이 된 것임을 말 해 주는 것이다.
그 때 개구리 소년 사건 때 세운 공로로
남조선 서울 경찰청장의 자리까지(2012.05 ~ 2013.04) 올라간 것이다
이상한 방향으로 몰고갔다
가족들은 경찰의 미행을 당하고 있었고
도청을 당하고 있었다 가족 한사람은 끝내 죽었다
수사에 의심을 가진 가족 한 사람은 죽고 말았다
미군은 나중에 자기들은 그 사건이 생긴 날을 전후하여 사격훈련을 하지 않았다고 남(한)측 사단장을 시켜서 그 사건 15년후에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 곳이 미군들의 사격훈련장임을 15년 후에야 밝힌 것이다
대구 성서초등학생들의 유해에서 큰 의문점 가운데 하나인 김영규 군의 윗도리와 체육복 바지의 매듭(사진)은 어른이 묶은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겨레> 자료 사진. / 편집입력, 재카나다동포련
어린이들 가운데 한 명의 두개골에서는 왼쪽 귀 위에 100원짜리 동전만 한 구멍이, 오른쪽 귀 옆에 500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큰 구멍이 발견되었다. 또 다른 두개골 목 왼쪽 위에서는 가로 4㎝, 세로 5㎝ 정도로 찢어져 있어 총상이나 외부 충격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여기에 대해 경찰은 “부패과정에서 그랬는지 외부 충격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부패할 때 한 부분만 구멍이 나나? 개죽음을 당한 어린이들의 부모는 어디에도 하소연 못 하고 자신들의 자식을 가슴에 파 묻었다.
결국 사건은 수많은 의혹만 남긴 채 2006년 3월 25일로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실종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사망 원인조차도 모른 채 이 들을 가슴에 묻었다. 왜??
리유는 간단하다.
남조선(한)의 주궈ㄴ 은 남조선 인민들로 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고 미국으로 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카나다동포전국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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