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사회가 만든 자살공화국 [통일시대] 2024.09.10
페이지 정보

본문
병든 사회가 만든 자살공화국
- 기자명 김태형 연구위원
명예자살 외에는 자살을 모르던 '아침의 나라'
일제 강점기,군사쿠데타, IMF 등 피크 경험
윤 정권 들어 다시 치솟는 경향성 보여
병든 사회가 만든 '사회적 타살'이라는 말씀
저자: 김태형. 통일시대연구원 연구위원.
![[사진출처: 세창미디어]](https://cdn.tongiltimes.com/news/photo/202409/2503_6585_1846.jpg)
자살로 10년마다 소도시 하나씩 사라지는 나라
한국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OECD 회원국 중에서 한국의 자살률은, 잠깐씩 1위 자리를 놓치기는 했지만, 십수 년째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한국의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2022년 기준 25.2명으로 OECD 회원국 중에서 유일하게 20명이 넘는다. 이것은 2위인 리투아니아(18.5명)보다 약 6.7명이 많고, OECD 평균인 10.7명보다는 2배 이상이나 많다. 특히 75~84세 인구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약 70명으로 2위인 슬로베니아에 비해 거의 두 배에 달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유명인의 자살이나 세상의 이목을 끌만한 독특한 자살이 아닌 평범한 자살은 기사화되지도 않고, 대중적 주목도 받지 못한다. 어느덧 한국에서 자살은 외면과 회피의 대상, 그리고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십수 년 동안이나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그 긴 세월 동안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비극적 상황이 초래한 좌절감과 무력감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라는 얘기를 하면 어떤 이들은 다음과 같은 짜증 섞인 대꾸를 하기도 한다.
“어디 그게 하루 이틀 일이야? 그래서 어쩌라고? 어차피 더 나빠질 텐데…”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시차를 두고 자살하고 있으며, 자살의 일상화와 만성화로 인해 언론이나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해서 그렇지 10여 년 간의 자살자가 거의 15만 명이라는 것은 자살자로 인해 10년마다 작은 소도시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만성적인 굶주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나라들의 자살률은 한국보다 훨씬 낮으며, 전쟁 중인 국가들의 자살률도 한국보다 훨씬 낮다. 이것은 한국의 대량 자살이 개인적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임을 강하게 시사해주고 있다.
강압적 권력의 등장과 함께 확 늘어난 한국인들 자살
한국인은 거의 자살을 하지 않는 민족이었다. 물론 과거에도 극소수 한국인들이 자살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오늘날처럼 우울과 절망, 염세와 비관, 불안과 고독 같은 원인에 의한 자살이 아니라 수치, 분노 등과 관련된 명예 자살이었다. 예를 들면 조선 후기의 형사 판례집인 『심리록』은 자살한 사람들이 ‘수치와 분노 때문에’ 자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수치와 분노로 인한 자살이란, 힘없는 백성이 학정을 견디다 못해 분해서 자살하거나 정절을 빼앗긴 여성이 수치감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등, 자살의 원인이 분명한 일종의 ‘명예’ 자살이었다. 과거의 한국인들은 명예 자살 외에는 거의 자살을 하지 않았기에 조선 시대의 기록들에서는 “사대부나 상층 계급에 속한 사람이 생활고나 우울증, 혹은 염세나 처지 비관 등의 ‘심리적’ ‘개인적’ 이유로 자살했다는 기록을 찾기는 어렵다.”(『자살론』 천정환, 2013, 문학동네, 194쪽)
[사진출처: 온더페이지, 예스24]
과거의 한국인이 자살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은 우리 민족이 긴 세월 동안 화목한 공동체 생활을 해왔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물론 이것은 과거의 한국 사회에 계급적 갈등과 불화가 없었다는 말이 아니라 수평적 관계를 이루고 있던 사람들은 화목하게 지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평민은 평민들끼리, 천민은 천민들끼리 화목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마음속엔 우리가 있다』 김태형, 2023, 온더페이지 참고)
거의 자살을 하지 않던 한국인이 자살을 많이 하기 시작한 첫 시기는 일제 강점기 시대였다. 한국을 식민지배했던 일본은 1910년대에 이미 여타의 자본주의 국가보다 자살률이 높아서 오늘날과 같은 정도에 도달했다.(『자살론』 194쪽)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인의 자살 수준은 일본인들에 미치지 않았다. 1926년 2월의 『동아일보』 논설은 “우리 조선인은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로 보아서 민족성이 평화적이니 적어도 평화를 타에 비하여 더욱 애호함이 사실이었으므로 자살과 같은 악착한 일은 차마 하지 못하던 것이 일반의 심성이었었다.”라고 하며, 한국인이 원래 자살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강조했다. 일제 강점기에 치솟던 한국의 자살률은 해방 이후 낮아졌지만 1960년의 4.19혁명을 군홧발로 짓밟은 박정희의 5.16군사쿠데타 이후에 다시 높아진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신자유주의 체제로 전환되기 시작한 90년대에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고 그 후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 자살률과 같은 지난해와 올해 자살률
안 그래도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자살률은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후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복지부에 의하면 2024년 1월부터 5월까지의 5개월 간 자살자 수는 총 6375명으로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무려 10.1%가 증가했다. 한국의 자살자 수와 자살률은 2013년에 사망자 수 1만 4427명, 인구 10만 명 당 28.5명을 기록한 후 2022년까지는 약간씩이나마 줄어드는 추세였다. 그러나 2023년의 전체 자살자 수 잠정치는 전년 대비 6.7%(864명) 증가하여 1만 3770명이었다. 여기에 더해 올해의 자살자 수는 지난해보다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병든 사회(일제 식민지, 독재정권)와 자살률 증가 간의 비례관계는 자살이 사회 문제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해주고 있다.
다음은 1960년대 이후의 년대에 따른 소득변화와 자살자를 비교한 표이다.
이 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박정희 유신독재 시대의 자살률이 오늘날의 자살률만큼이나 높다. 1960~1970년대 내내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5명 이상을 유지할 정도로 높았다. 1973년의 자살률은 27.61명이었고, 1975년에는 31.87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유신독재 시절의 자살률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자살률이 가장 높다고 하는 오늘날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은 각종 국가통계를 비밀문서로 분류·통제했고, 자살 통계 역시 은폐했다.(『자살론』 52~53쪽/153쪽)
[사진출처: 나무위키]
민주화 투쟁이 줄이고 신자유주의가 늘인 자살률
둘째, 항쟁과 투쟁이 있으면 자살은 줄어든다. 70년대부터 서서히 고조되던 민주화운동은 1980년대에 들어서자 1987년의 6월 민중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으로 폭발한다. 이후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 사회에는 거센 민주화의 물결이 휘몰아치게 되는데, 이와 동시에 자살률이 감소했다. 물론 한국 사회가 급속히 자본주의화 됨에 따라 자살률은 체계적으로 증가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1987~1991년 사이에는 자살자의 수가 다소 감소했다. 예를 들면 1988년의 인구 10만 명 당 자살자는 18.59명(경찰 통계)이었다.(『자살론』 320쪽)
셋째, 신자유주의 체제의 가장 큰 후유증이 바로 자살이다. 1998년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자살자는 그 이후부터 증가추세를 유지(『자살론』 68쪽)하며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신자유주의 체제야말로 자살의 결정적 원인임을 암시해준다. 이와 관련해 1990~2004년 사이 한국의 거시 경제지표와 자살률을 비교 조사했던 경제학자 노용환은 “자살률과 소득분배 지표 사이에 확실한 상관관계”가 있다면서 “한국의 급격한 경제적 양극화가 자살률의 급증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자살론』 211쪽)
넷째, 전체적인 물질적 부의 수준과 자살 사이에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던 유신독재 시기의 자살률은 2000년대와 마찬가지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또한 “한국이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는 사이에 한국의 자살률은 늘 세계 최상위권”이었다. “1990년대에 비해 2010년대의 한국인은 두 배나 더 많이 자살”(『자살론』 216쪽)했는데, 이것은 불평등에 기초한 경제성장 혹은 물질적 성장이 자살 예방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전 경복궁 조선총독부 청사 [사진출처: 위키백과]
자살의 원인을 개인으로 돌렸던 일본 총독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후 자살자가 급증하던 1920년대 초중반에 『동아일보』 는 장문의 사설을 통해 조선인 자살의 최대 원인을 빈곤으로 지목하면서, 조선총독부의 식민통치를 비판했다. 한 마디로 자살의 원인이 병든 사회에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1926년 2월의 동아일보 논설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자살이라고 하는 행동이 우리 조선인 간에 많이 나타난 것은 십 년 내외의 일… 그 죄가 자살자에게 있다고 하는 것보다도 사회에 있고 정치에 있다 할 것이다.(『자살론』 304~305쪽)
반면에 일제의 총독부 경찰은 자살이 ‘신경쇠약’ 같은 개인적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강변했다. 1931년에 총독부는 경찰행정 관보인 『경무휘보』 제306호를 통해 ‘경제 문제는 자살 증가의 원인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자살론』 256/305쪽) 일본 총독부는 어용 지식인들과 함께 자살의 원인은 정신장애라는 주장을 목적의식적으로, 지속적으로 유포했고, 지식인들을 망라하는 1920~30년대의 한국인들은 ‘신경쇠약 → 세상 비관(염세) → 자살(기도)’이라는 도식을 상식화하게 되었다.(『자살론』 263/265쪽) 이를 배경으로 총독부는 정신장애(신경쇠약) 치료를 권장하는 동시에 다양한 자살방지 캠페인을 전개했다. 예를 들면 한 일본인 자산가와 용산경찰서가 협력해 한강 다리에다가 “잠깐 기다리시오!”라는 팻말을 붙였고, 한강 인도교의 “전등을 늘이고 철망을 치고 망보는 사람을 늘이는 계획”을 시행하려고 했다. 그러나 자살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사진출처: 원대신문]
자살은 병든 사회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다
과연 오늘날의 한국은 일제 시대와는 다를까? 한국의 기득권층과 다수의 심리학자들은 자살의 원인과 책임이 개인에게 있다는 비과학적이고 반민중적인 견해를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널리 퍼트려왔다. 그 결과 21세기의 한국도 일제 시대와 마찬가지로 우울증 치료를 권장하는 것과 함께 다양한 자살예방 캠페인을 전개했다. 예를 들면 서울시는 한 생명보험회사와 협력해 ‘스토리텔링’ 교각과 ‘한 번만 더’ 동상을 자살자가 많이 발생했던 마포대교에 설치했다. 적어도 자살 문제를 놓고 볼 때, 단지 신경쇠약이 우울증으로 바뀌었을 뿐, 식민지 조선과 오늘날의 한국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자살의 진정한 원인인 사회 문제를 은폐하며 자살을 개인 문제로 몰아가고, 정신장애의 치료를 권유하며, 자살예방 캠페인을 벌이는 것까지 신통하게 똑같으니 말이다.
한국인들의 대량 자살은 본질적으로 병든 사회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다. 이런 진실을 계속 외면하고 자살의 원인과 책임을 계속 개인에게만 돌린다면 한국의 자살률은 절대로 낮아지지 않을 것이다.
출처 : 통일시대 (https://www.tongiltimes.com)
- 이전글[통일시대] 9월 8일은 미군이 조선반도남반부를 점령군으로 강점한 날이다. 미군 강점 79년, 이대로 둘 것인가? 24.09.16
- 다음글[통일뉴스] 평안북도에서 홍수피해가 거의 없었던 운산군의 비결은? [노동신문] 24.09.1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