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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858기 사건 30주기] ② 만들어진 테러범 김현희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중심에 국정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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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10-08 19:29 조회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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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858기 사건 30주기] ② 만들어진 테러범 김현희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중심에 국정원이

 

신성국 신부 | 2017-10-07 07: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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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입력/재카나다동포전국연합회)

 

 

문 5) 감추는 자가 범인이라고 하잖아요. 국정원이 뭔가 숨기고 있다는 냄새가 풍기네요. 김현희가 폭탄선언을 하거나 양심고백 하면 국정원의 치부가 탄로날 것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답) 충분히 그렇게 의심받을 만한 행동을 국정원 스스로 자행했지요. 가족들을 따뜻하게 대해주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만 했어도 가족들은 마음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심하게 모욕을 당할 때마다, “이게 도대체 내 나라 맞는가?”하면서 절규하고 한탄했지요. 마치 세월호 유족들이 구조도 안한 정부에 대해서 “이게 나라냐?”하는 심정과 같습니다.

지금 보세요.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하에서 국정원이 무슨 짓을 했는지 하나씩 드러나지 않습니까? 국정원이 노무현 대통령이 논두렁에 시계를 버렸다는 말을 만들어내지 않았습니까? 2012년 대선 때는 국정원이 박근혜 후보 당선을 위해 심리전단과 댓글부대를 만들어 부정선거에 개입하지 않았습니까?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중심에 국정원이 있지 않습니까?

문 6) 진상규명 활동에 대한 국정원의 조직적인 방해와 탄압이 상당했군요. 실제로 당한 일들이 무엇이었나요?

답) 실종자 가족들의 중언에 따르면, 정보기관과 대한항공으로부터 감시 및 협박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특히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가족들에 대한 정보기관의 감시는 일상적으로 이루어졌지요. 국정원 직원은 가족들이 사는 아파트 경비원 사무실에서 동태를 살피기도 하고, 또한 국정원이 가족들에게 김현희를 사면시키기 위해 협조해달라고 했는데, 가족들이 협조 못하겠다고 하면 멱살을 잡고 공포 분위기까지 조성했지요. “안기부(국정원)는 우리가 무슨 범죄를 저지른 죄인인양 감시와 탄압을 일삼았지요”(실종자 가족들의 증언, 2004년)   

국정원(안기부) 뿐만 아니라 대한항공사의 감시도 대단했지요. 실종자 한 가족당 항공사 3-4명 직원을 투입하여 감시하고, 실종자 가족들간의 교류와 연락을 못하게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승무원 가족들과 노동자 가족들을 ‘분리’시키는 역할도 대한항공사가 담당했지요. 대한항공은 사고 책임의 당사자로서 누구보다 승객들과 승무원들에게 사죄하고 위로와 보상을 해야 할 입장인데, 오히려 희생자 가족들에게 하지 말아야할 감시와 방해에 앞장섰으니 정말 해도 너무했습니다.

문 7) ‘한점 부끄러움 없이 떳떳하게 수사했다’는 국정원이 진상규명 운동을 방해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어머니들의 생생한 증언을 듣기 위해 인터뷰도 했다고 하는데, 어머니들은 어떤 말씀을 하시나요?

답) 이 사건을 만나서 살아온 어머니들의 삶은 다양하지요. 탑승객 대부분이 중동 노동자이신 서민층입니다. 이역만리 중동에서 노동하다가 그리운 가족들을 만난다는 부품 꿈을 안고 돌아오는 길에 날벼락을 맞았으니 가족들의 슬픔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분들이 정부의 사고 조사 발표와 국정원 수사 발표에 대한 의혹과 불신이 팽배한 것입니다. 의혹이 너무 많고 아직도 문제 해소가 전혀 안되다보니 정말 ‘진실이 뭔지를 알고 싶다’는 그 마음 뿐입니다.

어떤 어머니는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가슴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요. 우리는 힘없이 짓밟히며 살아왔어요”


미모의 처녀 테러범

문 8) 남편과 자식들이 KAL858기 사고로 죽었다는데, 사고 조사는 왜 그토록 허술한가요? 사고 조사를 너무 서둘러 발표했고,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답) 1987년부터 30년동안 매년 발표한 가족들의 성명서는 일관되게 ‘제대로 조사하여 진실을 밝혀 달라는게 가족들의 요구’입니다. 저도 이 사건에 관여하기 전에는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사건 관련 자료를 보고, 2007년 10월에 법원에서 받은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을 꼼꼼히 읽어보니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5천 여쪽의 수사기록을 보면 깜짝 놀랍니다. 한마디로 ‘공상소설’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듭니다. 검찰과 국정원이 이 자료를 왜 감추려 했는지 알겠더라구요. 이 자료들은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하여 7년 만에 대법원 승소를 거쳐 받아낸 수사기록, 재판기록, 김현희 진술서입니다.

문 9) 정보 공개 소송이 무려 7년이 넘게 걸렸네요. 말하자면 사건 발생 20년 만에 수사 자료를 받아낸 것인데, 국정원과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했으면 항소할 이유가 없는데, 3심까지 갔으니 감추고 싶은 내용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답) 북한 자료를 가지고 ‘북한 미녀 테러범 시나리오’를 만든 기록으로 보면 됩니다.

문 10) 김현희를 미모의 처녀 북한 공작원으로 부각시키고, 김일성 종합대학을 나온 엘리트 출신의 정예 공작원 이미지로 부풀렸다면 ‘007 영화’나 ‘마타 하리’처럼 미모의 첩보원 소설 수준의 수사기록이군요. 그런데 가족회와 대책위에서는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을 분석하여 책도 발간했나요?

답) 진상규명 대책위의 서현우 조사팀장이 수사기록을 중심으로 1년여의 조사와 분석을 거쳐서 각고의 노력으로 책을 발간했습니다. 'KAL858기 사건 종합 분석 보고서’를 저술하여 2010년도에 출간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재판기록에 피고인 김현희 인적사항이 있습니다. 인적사항에 김현희 이름 하나, 생년월일, 주소, 부모 이름이 있는데, 정작 중요한 공민증 번호(주민등록증)가 빠졌습니다.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 탈북자들이 인적 사항을 조사받을 때, 기본적으로 공민증 번호부터 밝혀야 합니다. 정말로 북한인인지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신원과 신분을 증명하는 신분증 아닌가요? 그런데 김현희의 인적사항에는 신분증 번호가 하나도 없습니다. 김현희는 공민증 번호를 기억 못한다고 진술합니다.

김현희의 국선 변호사인 안동일이 쓴 책  ‘나는 김현희의 실체를 보았다’(2004년, 동아일보사 발간) 56쪽 내용 “김현희의 기억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한번 암기한 것은 왠만하면 잊어버리지 않았다. 맹세문, 선서내용, 교육훈련 내용까지 대부분 소상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시간과 장소, 지명, 대화 내용 등 자세한 부분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어 우리를 경악시켰다”

이렇게 기억력이 뛰어날 정도의 김현희가 공민증 번호를 모르고, 노동당증 번호를 모르고, 김일성 종합대학 학생 번호도 모른다. 이게 말이 되나요?

문 11) 피의자들이 경찰서나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조사는 신원조회 아닌가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등 물어보잖아요. 그런데 김현희는 인적사항에서 가장 기본적인 신원 증명조차 없네요.

답) 제가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에 있는 김현희 인적사항에 대하여 탈북자에게 물어봤어요. 탈북자의 대답은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 가면 인적사항을 철저히 조사합니다. 신원과 신분을 모두 사실대로 털어놔야 합니다. 만 17세 이상된 탈북자는 누구나 공민증 번호를 외웁니다. 북한에서 노동당원으로 있던 사람들은 노동당증 번호도 외웁니다. 군인으로 있던 사람은 군번까지 외웁니다. 자신이 아는 신분증 번호는 다 알려줘야 탈북자라는 증명이 됩니다. 김현희가 이런 번호들이 하나도 없다면 17세 이후에는 북한에서 살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거짓말의 바벨탑

문 12) 그렇다면 국정원이 수사를 할 때 공민증의 가짜 번호를 만들어 기록할 수 있지 않나요? 그것을 누가 압니까? 아무도 확인할 방법이 없잖아요.

답) 국정원 수사관들이나 검찰이 그런 생각을 안했겠어요?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지요. 왜냐하면 북한에서 그 번호를 가진 사람이 실제 나타나서 공민증이나 신분증을 내놓고 입증하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위험부담이 있잖아요. 실제로 그런 실패가 있었습니다.

국정원은 수사결과 발표에서 김현희가 북한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물증을 하나 제시했습니다. 그 물증은 1972년 11월 2일부터 4일까지 남북조절위원회가 평양에서 개최되었는데, 그 때 중학교 1학년이던 김현희가 남측 대표단 장기영에게 꽃다발을 증정했다고 한 화동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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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1월 2일 남북조절위원회 2차 회담 때 김현희(화살표)가 장기영에게 꽃다발을 주었다고 했으나 이 역시 거짓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북한의 정희선이라는 여성이 나타나서 화동 속의 사진은 김현희가 아니라 자신임을 입증했습니다. 1988년 1월 15일에 국정원 수사결과 발표가 난지 두 달 후인 3월 6일에 정희선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 사건에 대한 반박을 했습니다. 그 당시 정희선은 평양 외국어 학원 교원이었고, 결정적으로 사진 속의 귀모양 때문에 김현희의 거짓은 탄로가 났습니다. 결국은 국정원은 사진속의 화동은 김현희가 아니라고 인정하고 맙니다. 이렇게 조작한 증거들에 대하여 북측에서 물증을 조목조목 들이대며 반박을 하니 국정원이 김현희 신분증 번호를 조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현희 인적사항에 공민증, 노동당증 번호가 모두 빠질 수 밖에 없었다고 보여 집니다. 수사기록상 김현희는 국적 확인이 안되는 신원미상의 인물로 나옵니다.      

문 13) 김현희가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에서 종종 MBC와 TV 조선에 나와서 인터뷰를 할 때, ‘왜 나를 북한사람이 아니냐고 의심하느냐?’ ‘왜 나를 가짜라고 하는가?’ 하며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답) 김현희에 대한 의혹을 만든 장본인은 김현희 자신이 아닌가요? 본인이 북한인임을 증명하는 방법이 그렇게 어렵나요? 증명서 곧 신분증(공민증) 번호 하나만이라도 밝히면 됩니다. 우리가 은행이나 관공서에서 신분증으로 본인을 증명합니다. 신분증도 제시하지 않고 자기를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신분증이 없으면 신분증 번호라도 내놓으면 됩니다.

김현희는 신분증 번호를 수사기록에 명시하면 됩니다. 어떻게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에 신분증 번호가 단 하나도 없나요?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는 김현희 수사는 불법 수사 아닙니까? 인적사항 자체가 부실한데, 십여 차례의 국정원 수사와 검찰수사를 하면 뭐합니까? 이런 수사를 가지고 재판을 받아서 뭐합니까? 기획 수사이고 기획 재판입니다.

김현희는 신원증명을 하지 못하면서 남에게 탓을 돌리는 괴상한 버릇이 있습니다. 자신의 공민증, 노동당증 등 할 수 있는 신분증을 다 밝히면 될 일을 전혀 안하면서 무조건 믿어달라고 하니 오히려 의심만 증폭되는 겁니다. 탈북자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을 정예 엘리트 공작원 김현희는 왜 못하는지?


막가파 정부와 가족들의 피눈물

문 14) 듣고보니 그러네요. 정말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돌아가는 부자연스런 행동이 사람들에게 의심을 더 사게 만드네요. 그러면 국정원의 행태를 살펴봤습니다. 김현희에 대하여는 후반부에 계속 질문하기로 하고요. 궁금한 게 정부의 다른 부처도 가족들의 인권을 유린했다고 하는데, 어떤 사례들이 있나요?

답) 다른 정부 부처들도 피해자 가족들의 기본권을 침해한 사례들이 많습니다. 이 사고가 발생하고 시신이 없으니 ‘실종사고’ 아닙니까? 실종사고는 직계 가족들이 직접 사망신고를 하게 되어 있지요. 그런데 정부가 일괄적으로 사망신고를 해버립니다. 가족들과 상의 한마디 없이, 통보도 안해주고 일방적으로 사망처리와 사망신고를 해버렸어요. 가족들은 ‘사망신고를 할 고유 권한까지 빼앗기는 인권 유린을’당했던 것이지요.

실종자 115명(외국인 2명 포함)의 사망신고를 정부가 한꺼번에 처리했다는 것은 가족들을 개돼지처럼 무시한 꼴입니다. 어떤 어머니는 자식의 대학 입학 때문에 호적등본을 발급 받았더니 자신도 모르게 남편을 사망 처리시킨 것입니다. 본인은 신고도 안 했는데, 정부가 몰래 사망처리를 해버린 것입니다. 정부가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는 못할망정, 국민의 권리마저 앗아갔습니다. 제가 가족들이 국가로부터 당한 갖가지 탄압과 인권 유린, 모욕 등 상처받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분들 곁에 함께 해야겠다는 결심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국정원을 ‘괴물집단’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는 절대 이렇게 못합니다. 

문 15) 실종자 가족들에게 한없이 가혹한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였나? 이게 나라냐?라는 촛불 시민들의 외침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정부가 김현희에게는 어떤 대우를 해주었나요?

답) 가족들의 인권유린과 기본권을 유린한 정부는 김현희에 대해선 특권과 특혜를 아낌없이 베풀어줬어요. 김현희는 국정원의 공주로서 영웅이었지요. 
국정원은 김현희가 자전적 수기를 출판하도록 대필 작가도 붙여주고, 출판비도 지원해주었지요.
김현희 고백록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고려원, 1991)  
김현희 수기집 「사랑을 느낄 때면 눈물을 흘립니다」(고려원, 1992)
김현희 회고집 「이은혜, 그리고 다구치 야에코」(고려원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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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이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도록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를 해주었습니다. 책 제목부터 이상한 냄새가 풍기지요? 미녀 테러리스트의 이미지로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책 제목에서 국정원 수준이 얼마나 저속하고, 저질스러운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최근에 이명박과 박근혜 국정원이 저지른 패악질 보세요. 국정원이 저지른 행위들이 얼마나 구역질나고, 추잡한지 치를 떨정도입니다.

문 16) 김현희가 1962년생이면 회고록과 고백록을 쓸 당시의 나이가 29세에서 30세인데, 이건 너무 하다 싶네요. 일반적으로 회고록은 은퇴를 하거나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이 인생을 정리하며 노후에 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답) 상식 밖이지요. 한마디로 국정원이 김현희 영웅화를 위한 전기가 필요했던 것이지요. 노태우 군사정권은 이승복 어린이처럼 또다른 이승복 ‘반공 영웅’이 필요했지요. 반공 영웅의 상징으로 김현희를 활용하기 위해 영웅전도 써준 것이지요.  

저는 김현희 책들을 읽으면서 답답했습니다. 김현희의 북한 생활과 자전적 이야기를 그렸는데 너무 추상적이고, 조잡했습니다. 특히 KAL858기 사건 관련하여 구체적인 증거들이나 사실들은 단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내용 전체가 추상적인 표현들로 꾸며진 소설이었습니다. 북한 관련 자료들을 짜깁기해서 내놓은 작품이 김현희 책들입니다. 최근 뉴스에 핫이슈가 된 영화배우 문성근과 김여진을 인민 배우로 합성하여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국정원 수준과 김현희 책 수준은 동일합니다.


명랑과 마유미 영화

문 17) 김현희 회고록과 자전적 도서들은 학교와 기업, 군부대에 무차별적으로 배포했고, 시중의 서점에서도 많이 팔려나갔다고 하는데요. 한가지 궁금한 것은 안기부가 김현희 고백록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노리고자 했던 어떤 목적과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요?

답) 당연히 어떤 의도가 있겠지요. 안기부 수사 결과발표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여 국민적 의혹을 불식시키는 것 아닙니까? 이 사건은 워낙 의혹투성이로 꾸며진 사건입니다. 의혹을 자초한 것은 국정원입니다.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구체적인 물증들을 제시하고, 김현희 신원에 대해 명확하게 밝혀주면 되는데, 물증들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고, 김현희 진술에만 의존해서 수사를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김현희 진술 자체가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김현희의 말 바꾸기는 수백 번도 더 했습니다. 본인이 진술 해놓고, 다 바꿉니다. 자신도 뭔 얘기를 했는지 모를 정도로 말을 바꿉니다.

국정원과 김현희가 누가 더 거짓말을 잘하는가 경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문 18) 김현희가 말을 많이 바꾼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증거가 있나요?

답)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한가지 사례를 봅시다. 앞서도 1972년 11월2일부터 4일까지 있었던 남북조절위원회 회담에서 김현희가 남측 대표 장기영에게 꽃다발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은 거짓으로 들통났습니다. 국정원도 시인 했습니다. 그러면 일단락된 것 아닙니까? 그런데 2008년도에 김현희는 이동복한테 꽃다발을 주었다고 증언합니다.

이동복과 김현희, 조갑제가 만나서 서로 맞장구치며 김현희는 이동복에게 주고, 이동복은 자신이 받았다고 하며 대화를 나누는데, 기가 찹니다. 도대체 누구한테 주었다는 것인지 시시때때로 바뀌는 김현희의 진술은 신뢰성을 잃었습니다. 이 화동 사진이야말로 ‘김현희’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유일한 물적 증거였는데, 이 마저 송두리째 무너졌습니다. 이런 진술의 번복과 수정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김현희는 자신이 김일성 종합대학 입학연도는 1977년 9월에 입학했다고 진술서에 기록합니다. 수사 기록에 김현희 인적사항에는 김일성 종합대학 입학연도가 1978년 9월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쓴 기록인데 여기저기 다릅니다. 한두 군데라면 애교나 실수로 봐줄 수 있는데, 수두룩 합니다.

문 19) 김현희의 반공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가 진짜 허접합니다.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답) 국정원은 수사에 대한 불신을 극복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데, 대중 친화적 방법으로 김현희 고백록과 수기 출판을 시도한게 아닐까 합니다. 또한 김현희를 TV 오락과 예능 프로에 출연시켜 인기 연예인처럼 둔갑시키고, 미녀 테러리스트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방법도 활용했지요. 그 외에도 여성 잡지와의 인터뷰, 월간조선 조갑제의 기획 시리즈, 여러신문 매체 등에 김현희를 인기 스타로 만드는 작업들이 7년 동안 진행 됩니다.

문 20) 국정원이 저런 일을 하라고 만든 국가기관인가요? 엄청난 국민혈세로 운영되는 기관이 국정농단에 앞장섰군요. 심지어는 영화 ‘마유미’도 제작되어 상영했다고 하는데요?

답) 자국민을 대량 살해한 테러범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삼아 영화를 제작하는 나라가 있을까요? 이런 영화를 만들어주는 미치광이 나라는 지구상에 없습니다. 그런데 있습니다. 도대체 영화를 왜 만들어줍니까? 도대체 김현희가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인가요? 사기꾼들이 뒤가 구리면 그걸 감추기 위해 화려하게 과대 포장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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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유미, 1990년 6월 9일 개봉. 감독 : 신상옥. 주연 : 김서라, 이학재, 강신성일

‘마유미’라는 영화는 1990년 6월에 상영되었는데 당시 실종자 가족들은 ‘마유미’영화가 제작되는 것에 반대하고 문화부에 제작 중단 성명서를 냈지요. ‘영화가 사실을 왜곡하여 흥행 위주로 제작’될 것에 따른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가족들 요구를 무시하고 영화 제작과 상영을 강행했습니다. 

‘마유미’는 신상옥 감독이 만든 작품인데, 반공 영화로 제작되어 정권 차원에서 반공홍보용으로 활용했지요. 

사고 이후 3년이 지났지만 가족들은 아직 상처가 아물지도 않고, 슬픔이 아직 채가시지 않은 상태였는데 ‘마유미’ 영화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아야 했지요.

남편과 자식을 억울하게 잃은 것도 서러운데, 여기에 국가마저 무시하고, 냉대를 했으니, 분노와 좌절, 심리적 충격은 얼마나 컸을까요? 도대체 국민의 설 자리는 어디인가? 국정원(안기부)은 희생자 가족들에겐 한없이 가혹하면서 김현희는 영웅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으니 인간성을 상실한 사이코패스 아닌가요? <계속>

[KAL858기 사건 30주기] ① 만들어진 테러범 김현희

 

(원문출처/진실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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