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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위훈 위대한 승리 [리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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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7-14 12:10 조회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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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영화]조국해방전쟁 제 6 부 https://www.youtube.com/watch?v=N83YA6m7jiM

불멸의 위훈 위대한 승리

[기록영화]조국해방전쟁 제 6 부
1951년 봄 전투는 3.8선 계선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영웅적 인민군대의 섬렴적인 타격앞에 전 전선에 걸쳐 맥아더의 20여개 사단들이 걷잡을 수 없이 녹아나게 되자 미제는 극도로 당황했습니다. 워싱턴의 두목들은 맥아더에게 더는 기대를 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미국 최대의 명장 맥아더장군은 결국 자기 자리마저 당해내지 못하고 파직의 운명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미국회에 불려간 맥아더는 이렇게 실토했습니다.
“미국이 조선에서 승리를 얻으리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참담한 손실을 보았다. 조선에서 흘리는 미국인들의 피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미제는 미극동 사령관을 이번에는 양 어깨에 수류탄으로 중무장을 한 포학한 매슈 리치웨이로 갈아데고 또 분별없이 날뛰어 보았지만 전선에서는 연속 패전의 패전뿐이었습니다.
조선전쟁 1년동안에 막대한 병력을 잃고 헤어날 수없는 멸망의 궁지에 빠지게 되자 리치웨이을 시켜 미국 대통령 트루맨은 1951년 6월 30일 우리측에 정전 담판을 제의해 왔습니다.
그렇게도 오만무례하던 미제가 흰기를 들고 조선을 찾아왔습니다 .
이른바 강대국의 체면도 별볼 처지가 못된 모양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인민은 이 정전 담판장에 기어든 미제 침략자들이 담판의 막뒤에서 새로운 침략공세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미제 침략군 7개 사단을 비롯해서 무려 21개의 사단을 전 전선에 들여밀어 대규모적인 하기 및 추기공세를 준비하기 위한 시간을 얻어내는 것 , 바로 이것이 정전담판을 제의한 미제의 진짜 속셈이었습니다.
적들은 모험적인 공세준비가 마감고비에 이루자 정전담판을 일방적으로 파탄시키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미 8군 관활 13만여명의 대공격집단이 수백대의 땅크와 1000여대의 비행기를 몰고 전선 동부로 쓸어들었습니다.
적들의 침공방향이 전선 동부라는 것을 명철하게 판단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놈들의 공세를 격파하기위한 탁월한 방침을 제시 하였습니다.
그것은 적들이 1211고지 방향에 역량을 집중하고 동해안으로 상륙하는 부대와 협동하여 전선을 개선 금천 이천 원산계선으로 올려 밀려고 시도 하는 정황에서 서해안을 방어하고 있던 수개의 아군연합들을 급속히 전선 동부로 기동시켜 적들의 하기 및 추기 공세를 격파 분쇄하게 하는 영월한 방침이었습니다.
서해안에서 떠난 인민군연합부대들이 전선동부로 신속히 이동해각고 있습니다. 승리는 이미 우리의 것으로 결정되고 있었습니다.
조국의 고지 1211고지는 전쟁 제 4계단에 분수령으로 높이 솟아 미제의 침략자들에게 죽엄을 안겨줄 결사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1211고지의 방위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밝혀주신 적극적인 진지 방어전과 주체적인 전법으로 싸움으로서 미제를 격멸하고야 말 필승의 신념과 만만한 투지에 넘쳐있었습니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던 전선동부의 1211고지는 무명고지, 1052고지, 매봉, 가칠봉, 대우산을 지배하는 주범으로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고지였습니다. 이고지는 양구와 린계에서 금강방향으로 통하는 전략도로들을 통제함으로서 이 도로를 따라 북으로 침공하려는 적들의 행동을 제압하고 있었습니다.
적들은 1211고지를 점령하기위하여 비아리 고등골 일대에 방대한 무력을 들이 밀었습니다.
드디어 적들은 1951년 8월 18일 부터 모험적인 하기및 추기 공세를 감행해왔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충성심에 불타는 1211고지의 방위자들은 적들의 대규모적인 공격을 첫걸음부터 무자비하게 꺽어놓았습니다.
1211 고지의 용감한 포병들은 곡사포와 직사포들을 방어 전연 전방에 접근 배치하고 적들의 파도식 공격 수열에 죽음의 포화를 안겼습니다.
전투는 오늘도 가열했지만 더 격렬한 싸움은 앞에 있었습니다.
준엄했던 그날을 회상하여 주도일 상장은 말합니다.
“1951년 여름은 적들의 발악적인 공세로 전선형편은 아주 어려웠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최고사령관 김일성 동지께서는 포화속을 헤치시고 최전선에까지 나오셔서 적들의 선멸적인 타격을 가할 방침들을 지시하여주셨습니다 . 최고 사령관 동지의 명령을 받은 우리 지휘관들과 전사들은 ……..”
경외하는 수령님을 최전선 전호 에서 뵈옵게 된 전사들의 가슴은 뜨거운 격정에 차넘치고 있었습니다.
감격의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갱도에 의거한 견고한 방어 진지에서 적들의 공격을 격파 분쇄함으로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것이 당의 요구라고 가르켜 주셨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은 1211고지 방위자들에게 생명보다 귀중한 신념으로 됐습니다. 전사들은 위대한 수령님과 당을 위하여, 사랑하는 조국을 위하여 항일선열들처럼 싸울 것을 굳게 결의했습니다.
고지에는 곡사포 화력이 더 증강 됐습니다. 아군의 적의 무리 일체 사격도 우수한 것이었지만 독립증기조의 불벼락앞에 적들은 무리로 녹아놨습니다.
가열처절한 격전속에서도 1211고지의 방위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독창적인 갱도 전법을 받들고 갱도 작업을힘차게 벌려나갔습니다.
적들은 매일 4만여발의 폭탄과 포탄을 퍼부으며 악을 썼지만, 인민부대의 갱도전에 넋을 잃을 뿐이었다. 적 땅크들이 짖어대기 시작할때면 우리전사들은 ‘양키놈들이 또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땅크 안에 놈도 기진맥진 했지만 대아메리카의 기술적우세도 최강의 신화도 속이 텅빈 파틀이 되어 주저않았습니다.
땅크 사냥군의 용사들은 날마다 시끄럽게 짖어대는 저 땅크를 아예 찾아가서 까부시기로 했습니다.
적들은 지놈들진지의 뒷면에서도, 숨어서 엎뎌 있던 골짜기 에서도, 가까운 방어 종심에서도 모조리 녹아놨습니다.
땅크 사냥꾼들과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있을때 아군의 용감한 습격조들도 적진지들을 들부수고 있었습니다.
습격전투에서 기본은 소멸이었지만 때로는 이렇게 산놈들도 필요했습니다. 이 양키놈은 목숨만 살려준다면 대 아메리카를 다 가져다 받일 기세로 불어대고 있습니다.이런 양키포로들의 진술은 대체로 정확했습니다. 정찰자료가 신속히 아군 지휘부에 보고 됐습니다. 변화된 적정에 따라 아군의 이동포들이 이동합니다. 이동포들은 적을 찾아 기동하면서 적의 집단들에 불의의 포화를 퍼붓건 했습니다.
한편 1211기지의 포병들은 직사포를 고지로 끌어올렸습니다.
포를 고지에 올려놓고 보병과 포병협동으로 적을 때려 잡을때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독창적인 전법은 1211고지를 끝까지 사수할 수 있게 한 유력한 주체 전법이었습니다.
월 중순에 이루러 전투는 더 가열처절해졌습니다. 근위강건 제 2보병 사단 용사들은 악명높은 미 246공격을 여지없이 격파하고 함정권을 적들의 죽엄토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불타는 고지의 전사들에게는 더 많은 총 포탄이 요구되었습니다. 용감한 수송용사들은 멸적의 탄약과 함께 후방인민들이 보내는 지성어린 위문품과 위문편지를 싣고 동부전선으로 1211고지로 향했습니다.
달리는 수송차를 따라 목숨보다 귀중한 조국땅을 한치도 내놓지 말라는 당의 요구와 부모처자들의 절절한 염원이 전선으로 1211고지로 달렸습니다.
낮과 밤을 이용하여 벌어진 한달동안의 격전에서 1211고지의 방위자들은 13만 명의 적들을 소멸 격퇴하고 리치웨이의 야망을 짓부셔놓았습니다.
‘당신들은 지금 100만의 병사들을 잃고 있는데 이제 1년이 더 걸리면 100만명 이상을 더 잃게 될 것이다’ 이것은 패전장군 맥아더가 리치웨이에게 한 충고였습니다.
그러나 명성을 떨쳐볼 야망에 들뜬 호전광 리치웨이는 도리어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하고 미 8군 사령관 템프리트를 전선에 내몰아 패전한 사단장들의 목을 떼는 소동을 벌린 후에 또 다시 추기공세를 감행했습니다.
치열한 공방전의 포연속에서 고지는 시간마다 낮아졌습니다. 허지만 1211 방위자들은 어버이 수령님께서 마련해주신 견고한 갱도병실에서 초가을 날씨에도 전사들이 감기들세라 심려하시는 수령님의 사랑에 목메이면서 혁명적 낭만에 넘쳐있었습니다.
품으로 찾아드는 한마리의 다람쥐에도 애정을 기울이는 병사들, 폭격에 부서진 박달나무에서도 노래를 찾아내어 화성악기 연주회를 여는 그들이 바로 우리의 노동당원들, 우리의 전사들이었습니다.
전사들은 갱도 병실이있었기에 승리의 신심과 용맹을 키우고 혁명의 노래로 원수의 포성을 짖누르며 혈전의 언덕에서 영웅적 위헌을 떨쳐 갈 수 있었습니다.
어깨 위에 총창과 함께 조국의 운명을 떠멘 전사들, 근위강건 제 2보병 사단 용사들에게 전투의 휴식참이 왔습니다. 이런때 전사들의 마음속에 어느듯 찾아오는 것은 어버이 수령님께서 찾아주신 내조국 내고향 생각이었습니다.
하늘의 계절새들은 철따라 찾아왔다가 떠나가지만 전사들에게 있어서 조국은 하루도 한시도 떠나 살 수 없는 어머니의 품이었습니다.
전사들은 한치의 조국땅을 위해서도 한목숨 기꺼이 바치리라 굳게 다짐했습니다.
혈전의 맹세는 가슴에도 바위에도 깊이 새겨졌습니다.
돌에 새긴글 “조국과 인민을위하여 !
당과 경애하는 수령을 위하여 !
영웅의 고지 1211고지를 끝까지 사수하리라” 부상을 당하고도 총을 잡고 있는 병사!
캄캄한 어둠속에서도 인민군전사들은 기어드는 적들의 가슴팍에 백발백중의 명중타를 안겼습니다.
10월 하순에 들어서면서 적들은 있는 밑천을 다 틀어대며 발악했습니다.
고지는 포화 속에 잠겼어도 인민들의 지원의 손길은 언제나 전사들에게 닿아 있었습니다.
1211고지, 이 영마루에 전쟁의 운명과 조국의 운명이 실려있었습니다.
전사들은 이것을 순간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1211고지로 악착하게 기어드는 적들을 소멸하기 위한 무명고지 타는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포병준비 사격에 이어 돌격에로 나가는 결사대원들이 당과 수령님께 엄숙한 맹세를 드렸습니다.
아군의 돌격로를 가로 막는 적 화점을 향고해 한치한치 전진하는 결사대원들, 위대한 수령님을 위하여 ! 당과 조국을 위하여 !
금청강 가슭에 이름없는 고등학생이었던 19살의 이수복 분대장은 자기의 화성 수첩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 나는 해방된 조선청년이다. 생명도 구중하다 . 찬란한 래일의 희망도 귀중하다. 그러나 나의 생명, 나의 희망, 나의 행복 이것은 조국의 운명보다 귀중치 않다.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 둘도 없는 목숨이지만 나의 청춘을 바치는 것 처럼 그렇게 고귀한 생명 아름다운 희망, 위대한 행복이 또 어디 있으랴!”
이수복 영웅은 가슴으로 적의 화구를 막아 부대의 돌벽로를 열었고 조국의 전진로를 열었습니다.
1211고지 방위자들, 보병들과 포병들 통신병들 그들은 모두가 조선 노동당이 낳은 불굴의영웅들이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작전지휘밑에 동부전선 부대들과 1211고지의 방위자들은 적들의 하기 및 추기 공세를 여지없이 꺽어 놓았습니다.
다시는 기어나올 수 없는 함정골에 빠진미제, 대아메리카가 총동원했던 수십만의 미제 침략군은 조선의 나지막한 언덕 하나도 넘어보지 못한체 추풍낙엽이 되어 역사의 오물장으로 떠나가고 있습니다.
1211고지의 방위자들의 승리의 노래와 춤은 미제 침략자들에게 안겨주는 또 하나의 위력한 포화였습니다.
조선의 1211고지에 오르려던 미제는 아득히 깊은 멸망의 구렁텅이에 굴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워싱턴이 보낸 최종예 사단들은 만신창이된 고용병들과 함께 1211고지를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상한다고 하여 상심령이라고 부르며 이 몰골이 되어 떠나갔습니다.
여기는 영국의 런던입니다. 몇달전에 무공을 세우겠다고 조선 전선으로 떠나갔던 영국여단들이 이렇게 누워서 돌아왔습니다.
대영제국이야 흥하던 망하던 어째든 살아서 돌아왔으니 기쁜 모양입니다. 이런 것들을 가지고 조선으로 강도질을 떠났던 대영제국의 운명도 가련하기는 됐습니다.
죄악의 소굴 미국, 트루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조선에서 우리의 역량을 공고히 했으며 증강하여 왔다. 우리 사람들의 사기는 높으며 우리부대들은 잘 훈련되고 잘 장비되고 최고도의 전투능력에 달하고 있다.”
잘훈련된 미1해병사단은 조선에 갔다가 이런 모양으로 귀국했습니다(죽거나 부상자로). 최고도의 전투능력을 가지고 1211고지로 기어오르던 미2보병사단도 쌍지팽이를 짓고 투르맨을 찾아 왔습니다. 볼만 합니다. 아주 볼만합니다. 이런 꼴아나마 하고 미국본토로 돌아온 놈들은 미제가 조선에서 잃은 고용병 숫자에 불과 몇 프로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머지 놈들은 한장의 사망통지소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침략자는 살아서는 돌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미국을 떠날때는 이 양키들도 다시 돌아가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성한 우리 조국강토를 더럽히고 무고한 우리 부모처자들을 무참히 살륙한 이 식인종무리들에게는 죽음만이 차려졌습니다.
아메리카가 캄캄한 어두움에 잠겨 멸망의 밤길을 헤메고 있을때 영웅의 나라 조선은 해솟는 아침을 맞이 하고 있었습니다. 이 화면은 1952년 봄날에 전선구군대 종군촬영가가 찍은 장면입니다(체육경기)
적극적인 전지 방어전 시기에 전선부대들에서는 이런 체육경기가 자주 있었습니다. 이 체육경기가 즐겁게 진행되고 있을때도 비행기 사냥꾼 전우들은 적기 사냥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최신형의 비행기와 저격무기와의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중기관총으로 한달동안에 적기를 10대나 쏘아떨군 김기호 이중영입니다. 영은 비행기 사냥꾼조 활동은 세계 전쟁사에 없는 일로서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조하실 수 있는 주체의 전법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영은 1952년 2월 모범비행기 사냥꾼조 대회에 참가했던 그때의 이야기를 감회깊이 들려주고있습니다.
비행기 사냥꾼조 전투원들은 기동전 야간전 유도전술로 오만한 적기들을 모조히 격추할 것을 굳게 결의했습니다.
영웅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새대들은 적기들을 쏴 올리던 그날의 용사들을 그려보았습니다.
인민군대의 저격무기 화력에 질겁한 적기들은 점차 저공으로 부터 고공비행기로, 단독비행으로 부터 편대비행으로 넘어갔습니다.
용려한 사냥꾼조 병사들이 격추한 적기는 1952년까지만 해도 2970여대에 달했습니다.
미제가 조선전선에서 연속 패전하게 되자 백악관의 대통령 자리에는 악명높은 호전광인 아이젠하워가 새로 들어앉아 자기의 첫사업을 조선에 기어드는 것 으로 부터 시작했습니다.
아이젠 하워는 영국여단에까지 나타나 병졸들을 사열해 보았습니다. 아직은 좀더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얼마 안남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보충병을 보내주어야 겠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제 입으로 감람나무 향기보다 화약내가 더 좋다고 한 아이젠하워는 전선을 돌아치면서 패전한 부대들을 수습했습니다.
이것은 마사진 자동차나 수리하는 가련한 처지에 빠지 영국여단입니다. 불이나 째이고 있는 영국여단을 다시 싸움판에 들여밀자니 보충병들이 필요했습니다.
영국여단에 아이젠하워가 선발한 괴뢰군 패잔병들이 보충되어왔습니다. 모조리 글어 모으는 것을 보니 심상치 않습니다.
조선에서 방금 미국으로 돌아온 아이젠하워가 1952년 12월 18일 어느 타자기 회사에서 연맹해가고 있던 패전장군 맥아더 까지 불러다 미국무장관 덜레스 개인집에서 조선전쟁 경험을 들어가면서 2시간 동안이나 새로운 흉개를 꾸몄습니다. 음모의 소굴을 나오는 아이젠하워의 머리속에는 이미 이른바 신공세 계획이 완성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활한 이자는 기자들에게 극동에서의 평화뿐아니라 세계의 평화에 대해 회담을 진행 했다고 지껄였습니다.
아이젠하워는 대규모적인 신공세를 감행하기 위해 병력을 증강하면서 장개석 군대까지 끌어들일 모의를 벌리고 있었습니다.
미제의 침략귀들을 환히 꿰뚤어보고 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선과 동서 양 해안을 철벽의 요새로 다짐으로서 적들의 신공세를 격파할때 대한 탁월한 방침을 제시 하셨습니다.
강력한 아군연합부대들이 기본전선과 해안 방어를 더욱 강화하기위해 승리의 신심에 넘쳐 기도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전투명령을 심장으로 받들고 노동당원들을 선두로 전선과 후방은 한덩어리가 되어 미제의 최후발악적인 신공세를 짓부수기 위한 총결사전 준비에 일떠섰습니다.
모든 것을 전선에로! 마지막 피한방울까지 다 바쳐 조국을 수호하자!
세한포병들의 가슴도 멸적의 포신도 적들을 바다위에서 철저히 쓸어버릴 만반의 준비가 다 됐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전략적 방침에 따라 인민군부대들은 기본 전선에 철벽의 방어전을 치고 서해안과 동해안연선을 난공블락의 요새로 전변시켰습니다.
방대한 상륙 무력을 들이밀어 서해안과 동해안에서 상륙작전을 벌리려는 적들의신공세앞에는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민군 해안포병들은 신공세를 기도하면서 홍천과 원산으로 기어들던 적함들에 명중포화를 퍼부었습니다.
적들은 1953년1월부터 4월 사이에만도 아군지상전선에 매일 600여대의 비행기를 출동시켜 폭격을 감행했습니다.
영령한 아군 전투기들이 가증한 적기들을 맹렬히 추격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도 아이젠하워의 신공세의기도는 산산히 부셔져 곤두박쳤습니다. 공중에서도 해안에서도 녹아나자 적들은 지상전선에서 돌파구를 열어보려고 미 8군 사령관 팀프리트의 지휘밑에 전선중부 전형고지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적들은 이 전투가 모범전투로 될 것이라고 떠별렸습니다. 아군은 갱도 진지에 의거하여 적들에게 섬멸적 타격을 안겼습니다.
미제의 이모범전투도 저들이 초청해왔던 유엔군 종군기자들의 면전에서 참패국으로 끝남으로서 세상사람들의 웃음거리로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추정국가들까지도 미제에게 더는 고용병들을 섬겨 바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지면용량이 부족하여 이하 생략함/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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